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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국가 상징의 중심에 들어선 미술관
갤러리 오브 아트(2)
 
이한빛 미술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24/07/11 [09:11]

수천억원 가치의 ‘지네브라 데 벤치’는 전시장 가운데 좌대 위에 올려진 상태로 전시돼 있다. 누구나 앞면과 뒷면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가로 38.1㎝, 세로 37㎝ 크기로 그다지 크지 않다. 미술관 연구에 따르면 이 작품은 원작은 이보다 큰데, 훼손으로 잘려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빈치가 20대(1474년에서 1478년 사이)일 때 완성한 초상화로, 그가 제작한 최초의 오일 페인팅이다. 또 여성을 야외 배경에서 그린 급진적인 그림이기도 하다. ‘모나리자’가 다빈치가 50대일 때 완성한 작품임을 감안하면, 꽤 일찍부터 배경이나 인물화에서 다양한 실험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뒷면에는 리히텐슈타인 인장이 찍혀 있는데,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에선 리히텐슈타인 왕자 요한 아담 안드레스 1세가 1712년 구매한 것으로 나온다.

 

250년 넘게 왕가에서 보관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왕가의 재정을 위해 매물로 나왔다.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금액인 500만 달러에 구매한 작품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오기 위해선 배송도 문제였다. 책임자였던 내셔널갤러리 그림보존 전문가 마리오 모데스티니는 리히텐슈타인 성 지하에 걸려있던 작품을 최대한 원상태로 가져오기 위해 나무로 크레이트를 짜는 대신 여행용 가방을 개조했다.

 

이때 사용한 가방이 바로 ‘아메리칸 투어리스터’다. 스티로폼으로 내부를 보강해 온습도를 조절했던 것. 작품은 취리히에서 뉴욕까지 ‘모데스티니 여사’라는 이름으로 1등석을 타고 날아와 미술관에 안착했다.  1967년 3월17일 작품이 대중에 공개되자, 초상화를 직접 보고 싶은 관객이 몰렸다. 한 시간 만에 1000명 넘는 관람객이 찾았다고 한다. 이후 뉴욕타임즈에는 ‘다빈치 마스터피스가 아메리칸 투어리스터 가방에 담겨 대서양을 건너왔다’는 광고도 실렸다.

 

  이외에도 고흐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그린 자화상, 클로드 모네가 아내 카미유를 모델로 그린 ‘양산을 쓴 여인’, 드가의 소녀상 ‘리틀 댄서’ 등도 서관에서 전시중이다. 드가의 회화도 걸작이지만, 3차원 조형을 실험했던 조각은 작가정신이 가장 잘 드러나는 매체로 꼽힌다. 색소를 칠한 밀랍에 면 소재의 몸통, 사람의 머리카락, 린넨 슬리퍼까지 말 그대로 ‘혼합 매체’다. 소녀도 여성도 아닌 그 사이 그러나 불안함은 없고 ‘프로 무용수’로서의 자신감이 가득하다.국립미술관답게 ‘미국(다운)미술’에 초점을 맞춘 것도 흥미롭다.

 

유럽의 아류가 아닌 미국 미술의 정체성을 찾기는 작가들의 오랜 과제였을테다. 광활한 서부 풍경을 묘사했는데 중세시대 성이 놓인 풍경화나, 아메리칸 버펄로를 말을 탄 채 사냥하는 미국 원주민은 유럽의 유명 장군들의 초상과 형태적 유사성이 쉽게 보인다.  방대한 규모의 서관을 관람하고 나면, 그 다음은 현대미술의 보고인 동관이다.

 

규모는 서관에 비해 현저히 작지만 그렇다고 동관을 가볍게 지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서관과 연결된 지하 통로를 지나면 알렉산더 칼더의 대형 조각이 가장 먼저 관객을 맞이한다. 벽을 장식한 엘스워스 캘리, 사이 톰블리를 지나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피카소, 모딜리아니가 차례로 펼쳐진다. 층을 올라가면 앤디 워홀, 잭슨 폴록, 로버트 마더웰, 바스키아 등 미국 현대미술의 정수가 모여 있다.

 

꼭대기 층에는 마크 로스코와 바넷 뉴먼 전시장이 별도로 마련됐다. 대상을 ‘재현’하는 것으로 미(美)를 추구하던 기존 미술사에서 벗어나, 형태가 아닌 색으로 숭고함을 이끌어내려 했던 두 작가는 비슷한 듯 다르지만, 미국 추상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들로 꼽힌다.거장들의 작품을 다 보고 옥상 정원으로 나오면 거대한 푸른 수탉이 눈길을 끈다. 현재 내셔널 갤러리 대표이자 글렌스톤 미술관을 이끌고 있는 미첼 레일즈의 기증품이다. 그리고 옥상정원 한쪽 끝에는 TV를 바라보고 있는 부처 조각이 있다. 한국 관객들이 그냥 지나갈 수 없는 백남준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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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7/11 [09:11]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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