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진숙 울주군 무거초 교사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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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아이들과 지낸 지 한 학기가 지났습니다. 방학을 위해 혹시 아이들이 미처 덜 배운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고 성적표를 갈무리하는 교사는 마음이 바쁩니다. 아이들은 여름방학이 목전이라는 사실, 단축수업을 하며 생긴 여유를 만끽하며 들뜬 마음을 한껏 표현합니다. 3월의 어색함과 낯설음을 뒤로하고 방학 직전의 교실은 너무 친해서 탈이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루에 몇 번씩 크고 작은 갈등을 만나고 대화모임을 통해 갈등을 중재하며 아이들의 마음에 친구를 미워하는 마음이 싹트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입니다.
요즘 학급에서는 쉬는 시간에 피구공으로 교실 앞에서 공굴리기 게임이 한창입니다. 교실에서 공을 던지는 것은 조용히 쉬고 싶은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는 반면, 공굴리기 게임은 괜찮을 것이라고 공동체가 합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공이 굴러가는 속도가 장난이 아닙니다. 옆에서 수업 준비를 하고 있으면 퍽퍽 소리를 내며 빠른 속도로 공이 굴러가는 소리와 공을 피하려 있는 힘껏 점프하고 착지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때로 “꺄악~”하는 아이들의 소리와 섞여 혼이 빠질 지경입니다. 소음이 너무 심하다 싶어 지도를 하기 위해 고개를 들어보면 세상 즐겁고 진지한 얼굴로 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마주합니다. 아이들의 표정이 너무 신나보여 절로 웃음이 납니다.
‘그래,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고, 서로 싸우지 않고, 잘 놀면 되지 뭐.’ 하는 마음으로 눈을 돌리려는 찰나, 책상에서 가위질을 하던 초록이가 재미있어 보였는지
“나도 하자. 나도.”하며 가까이 옵니다. 소음과 혼돈의 공피하기 놀이에 정신이 팔려 남자아이들은 초록이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감성 천재인 초록이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지며 억울한 얼굴이 됩니다.
“지들끼리만 하고, 하자고 말을 해도 안시켜주고....”
초록이가 막 자리를 뜨려는 찰나 게임에 참여하고 있던 분홍이가 초록이를 발견했습니다.
“초록아, 가지 말고 저기 하양이 옆에 빈자리에 앉아서 하면 돼.”
반쯤 몸을 돌리며 툴툴거리던 초록이가 못이긴 척 하양이 옆에 앉았고, 게임은 계속 진행됩니다. 분홍이는 얼마 전 사회 모둠활동에서 같은 모둠원이었던 초록이와 갈등을 빚어 대화모임을 통해 초록이가 원하는 것을 자세히 관찰하겠다고 했습니다. 초록이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인지 그 순간 초록이의 말과 행동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세심한 분홍이에게 감사와 감동의 마음이 밀려옵니다.
수업 종이 울리면 아이들은 약간의 흥분 상태로 수업을 맞이합니다. 그래도 계획한 수업은 잘 진행됩니다. 계속 짝이 바뀌는 질문 수업에서 바뀌는 짝에게 인사하고 익숙하게 질문하며 자연스럽게 결론을 이끌어 내는 질문 수업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바뀌는 짝에 대해 불만을 가지지 않고, 모둠원이 바뀌어도 나랑 친하지 않다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한 학기 동안 서로를 이해하고 쉬운 일보다 ‘어려운 일’을 하려고 모두 함께 노력한 덕분이지요. 덕분에 어떤 형태의 수업을 진행해도 원활한 수업이 이루어집니다. 하고 싶은 일 보다 ‘해야 할 일’에 집중해 친근한 학급 분위기와 집중력 있는 수업 흐름을 만들어 낸 아이들이 새삼 대견합니다.
법정 스님은 사람의 정서가 불안정한 것은 마음의 중심이 잡히지 않은 탓이라고 했습니다. 중심이 잡히지 않은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다가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 없는 말이나 행동을 하게 된다고 했어요. 그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면 내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관성이 생겨나 그러한 말과 행동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했습니다. 사춘기를 앞두고 있거나 사춘기에 막 진입한 아이들의 마음이 중심이 잡히지 않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 때 어른도 흔들리는 아이들의 마음에 휩쓸려 불쑥 일어나는 찰나의 부정적인 행동에 영향을 받기 쉽습니다. 교실의 어른인 교사는 불안정한 아이들의 마음을 안정감 있게 잡아주어야 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가지고 학급 공동체가 함께 동의한 원칙으로 탄탄한 울타리를 쳐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교실에서만큼은 편안함과 안전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울타리가 안정적이면 그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끼를 마음껏 발산하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수업에 임하며 스스로를 성장시켜 갑니다. 아이들 스스로 만들어 낸 학급의 선순환 덕분에 교사인 저도 바쁜 학기말에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 학기, 마음 착하고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 노력하는 좋은 아이들을 만나 선물 같이 행복한 매일을 보냈습니다. 아이들 뒤에서 보이지 않게 학급을 응원해주신 부모님 덕분입니다.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감사드리며 아이들과 함께 의미 있는 여름방학으로 채워가시기를 응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