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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기획-한국문인협회 시카고> 동상이몽
 
정종진 소설가   기사입력  2024/08/07 [17:25]

▲ 정종진 소설가  © 울산광역매일

 “네 증조부 산소가 충북 어지렁골 감돌산에 있단다.” 

 

 어르신네들은 아이들이 조상 묘지의 소재를 모르면 DNA가 바뀌어 남의 집 손자로 변해 버릴까 봐 노심초사다. 지명이라도 단순하고 쉬우면 얼마나 좋으랴? 어른들은 중요성을 강조하면 조금이라도 더 기억하리라 믿지만, 아이들은 짜증이 나려든다. 더욱이 그 할아버지의 출생이나 벼슬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면 더 흥미 없게 된다. 꼭 삼국사기 첫 페이지 읽는 것 같이 맹랑하고, 삼일독립선언문 외우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저항이 간다. 어르신과 아이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나보다 몇 살 많은 분은 엄청 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늙어서 시대에 뒤진 아이디어로 가득 찬 사람으로 취급하여 상대도 안 하려든다. 그러면서도 나 스스로는 10년 20년 더 젊은 사람들과 함께 새 세대를 구상할 창의력과 기발한 착상으로 가득하다고 생각한다. 

 

 사우나탕에 앉아 있으니, 옆에 두 사람의 중년 동양인이 둥글둥글 구르는 언어로 대화를 한다. 나도 슬쩍 대화에 껴들어본다. 

 

 “당신들은 어떤 언어로 말하는 겁니까?”

 “월남말입니다.”

 “아 그러세요? 나는 월남에 있었던 적이 있는데.”

 “오, 정말요? 언제?” 

 

 나를 월남에서 무역하던 사업가로 착각했는지, 그들은 반색을 한다.  

 

 “67년도에 군인으로 가서 15개월을 전투했어요.” 

 

 하나의 중년 신사가 실망한 표정을 보이더니, 킥킥 웃으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또 다른 신사는 어이없다고 쭝얼쭝얼하며 고개를 돌려버린다. 

 

 “왜요?”

 “너무 오래 전 일이잖아요?” 

 

 그들은 나와 함께 늙어가는 나보다 약간 젊든가, 그저 좀 젊어 보일 뿐인 인생동료들이었다. 나는 내가 엊그제 경험했던 일을 이야기하는데, 너무 오래 전 일이라니? 그러나 그들은 이 세상을 자기들에게 물려주고, 이미 죽어 없어졌어야 될 쥐라기공원의 시조새 정도로 나를 취급하는 말투다. 그들이 42세와 44세라고 하니, 제나 내나 늙어가며 하향 길을 걷는 인생이긴 마찬가지다.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월남에서 전투하던 때는 내 몸의 신진대사가 한창 왕성하고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들은 아마 아버지 몸속에도 아직 없었다. 내가 초콜릿을 주며 머리 쓰다듬던 소년이 자라서 그들의 아버지로 된 극단적인 경우도 가능한 일이다. 

 

 별 변화가 없던 주위 사람들이라면 그냥 같이 늙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자기들이 태어나기 전의 격변기 사람이라니까, 아주 옛날 사람으로 생각되는 모양이다. 희랍신화 비슷한 말장난에 출현하는 의인화된 인격체라든가, 할머니가 들려주던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의 등장인물 같이 생각되나 보다. 

 

 은혜 갚은 물고기로 살았던 전생의 이야기라든가, 계수나무 밑에서 토끼와 함께 송편 빚던 염소 이야기라면 얼마나 관심 없고 지루할까? 그 허무맹랑한 스토리의 주인공이 실제 내 앞에 하나의 인간으로서 앉아있다면 어떨까? 그것도 머리칼이 하얗고 걸음도 잘 못 걷는 산신령 모습이라면 억지로 이해하려들겠지만, 까맣게 염색한 머리칼에 자기들과 똑같은 모습이라니? 괜히 화도 나고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인카네이션으로 다가온 신처럼 놀랍진 않겠지만, 인간으로 잠시 바뀐 트랜스모그리파이드 호랑이 정도로, 믿기엔 너무 엄청나다는 눈치다. 

 

 동상이몽? 나는 그들을 같이 늙어가는 벗님네로 생각하지만, 그들에게는 내가 이야기 속에만 있어줘야 할 가상인물이다. 그들에게는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고 껄끄럽게 느껴진다. 왠지 알 것도 같다. 월남인이라면 나는 고구마나 삶아 먹고 전쟁에 지쳐서 농사일도 되는대로 하며 살던 60년대의 검은 옷 입은 시골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실제 오늘의 월남은 미국이나 별 다름 없는 선진국이기 쉽다. 실제로 한국이 가난했던 60년대에도 퀸혼이나 사이공시내에는 소니 TV 안테나가 집집마다 세워져 있었다. 더욱이 내 앞에 있는 여기 이 사람들은 미국시민권을 받은 전후태생 월남인들이다. 월남을 이끌 지식인들이고, 가난이나 역경을 모르는 엄청 부잣집 자녀들이기 쉽다. 내가 생각하는 부분은 그들 관념에 없고, 그들이 알고 있는 견해는 내 생각과 판이할 테니, 같은 공간에 있어도 헛일이다. 월남말로 소위 크헝코(Nothing)다. 

 


 

 

1). 순수문학 소설 당선으로 등단(2006년)

2).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 공모 소설당선(2007년)

3). 한국산문 수필공모 당선(2010년)

4). 경희 해외동포 소설 우수상(2010년)

5). 서울 문예창작 소설 금상(2013년)

6). 재외동포 소설 우수상(2014년)

7). Chicago Writers Series에 초청되어 소설 발표 Event 개최(2016년)

8). 국제 PEN 한국 해외작가상(2016년)

9). 해외 한국소설 작가상(2023년)

10). 제 4회 독서대전 독후감 공모 선정 소설(2023)

11). 한국문협 회원, 국제 PEN회원, 한국 소설가 중앙위원

12). 시카고 문인회장 역임. 

13). 시카고 문화회관 문창교실 Instructor 

14). 현 미주문협 이사

 

저서: 단편소설집---“발목 잡힌 새는 하늘을 본다” “소자들의 병신춤” “달 속에 박힌 아방궁”

      중편소설집---“나비는 단풍잎 밑에서 봄을 부른다”         

      수필집---“여름 겨울 없이 추운 사나이”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 “눈물 타임스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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