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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기획-워싱턴 문인협회> 뉴욕 가는 날
 
김은국 시인 시산맥 회원   기사입력  2024/12/05 [16:09]

▲ 김은국 시인 시산맥 회원  © 울산광역매일

 이제 토요일이 토요일이 아니다. 고일 셋째 아들 첼로 교습을 위해 뉴욕에 가야 한다. 토요일이면 늘 미명에 깨어나 차를 몰고 북으로 향한다. 오늘, 하늘은 탁한 구름을 마셨는지 무거워 보였다. 마치 지구상에서 가장 큰 고래, 흰긴수염 고래가 배영으로 수영하는 것처럼 보였다. 얼마 못 가서 고래 등에서 숨이 빠져나오며 주위의 물을 다 쏟아 내듯 하얀 비가 억수처럼 내렸다.

 

 그 때도 그랬었다. 중3 때, 학교를 파한 토요일 오후, 친구와 집으로 오는데, 갑자기 세상을 점령하듯 퍼지는 먹구름의 혀들이 우리들을 감싸안으며 소나기를 퍼부었었다. 번개가 하늘을 치며 번쩍일 때, 우리는 달리고 달려 어느 작은 빌딩 처마 밑으로 몸을 피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달리는 비의 발소리는 점점 땅에서 물차는 소리로 변하고 그 차오르는 물의 몸집을 보며 세상 종말에 대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친구의 입에서 나오는 노랫소리…”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한참 인기가 하늘까지 닿았던 산울림의 ‘청춘’이다.

 

 아이러니한 가사다. 우리는 단 한 번밖에 없는 아름다운 청춘 때, 늙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지금보다 40년이나 젊었던 청춘 때, 우리는 그 청춘을 몰랐다. 꽃이 지기 전에 피었던 그 아름다움을 몰랐었다. 피어 있는 장미의 빨강을 보라. 비 오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사서 들고 가는 이유는 주중의 가장 중간에 사랑이 가장 훨훨 타오르기 때문이 아닐까. 노련하게 포개진 빨강 장미 꽃잎 안으로 들어가면 사랑은 더욱더 짙어진다. 그래서 확 피어 있는 청춘은 아름답다. 어여쁜 부케 속에 피어 있는 하얀 장미를 보라. 사랑하는 유일한 한 사람을 위해 순결한 매력을 오래 지켜온 신부의 깨끗한 마음이 속속들이 피어 있다. 그래서 청춘은 순수한 것이다. 파란 장미를 보았는가. 열기가 솟아오르는 여름 한가운데 파란 바다처럼 청춘은 깊디깊다.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는 용기와 패기가 피어나 있는 때가 청춘이다. 그래서 청춘은 실패를 모르는 용수철의 탄력을 가지고 있다. 같이 ‘청춘’을 불렀던 그 친구는 청춘을 잘 보냈을까. 아니면 청춘의 가사처럼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 손짓에 슬퍼 지내며 살고 있을까. 참…그 청춘이 보고 싶다.

 

 링컨 터널을 지날 때쯤, 이제 먹구름은 비로 다 소모되고 옅은 하늘의 얼굴이 조금씩 잿빛 구름 뒤로 몇 군데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아래로 드러난 뉴욕 맨해튼의 빌딩은 금방 샤워하고 난 후, 떠 있는 구름 몇 점을 포개어 자기 몸을 가리고 있었다. 저 빌딩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서 있었을까. 늘 똑같은 건물을 지나며 보지만 볼 때마다 빌딩의 이미지는 달랐다. 오늘은 무겁게 내려온 구름을 받치고 있는 지구의 기둥처럼 천장을 받치고 있는 듯하다.

 

 대부분의 빌딩은 모가 난 사각형이다. 정서가 메마른 빽빽한 도시의 따돌림을 이기려면 모가 나야 한다. 그저 둥글게 예 찬성하며 등을 굽신거리면 도시에서는 무시와 천대를 받는다. 모서리에 직각으로 예리한 지혜의 모가 좀 나 있어야 도시가 의도적으로 험담하고 때론 속여 내 소유를 갈취하는 짓거리를 할 때,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의 무거운 압박을 견디며 이 도시를 경영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곁눈질로 차창 가에 비친 늦가을을 훓어본다. 만추가경이라는 말도 있다. 늦가을에도 진정, 아름다운 경치가 있을까. ‘이방인’의 작가로 알려진 알베르 카뮈(Albert Camus)는 “낙엽이 꽃이라면 가을은 두 번째 봄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 내가 맺었지만, 떨어지고 있는 내 인생의 낙엽들을 꽃이라고 생각하자. 지금 지나고 있는 계절을 두 번째로 맞는 인생의 봄에 와 있다고 생각하자. 그러면 잿빛 하늘 아래에서 견디고 서 있는 빌딩의 인내는 숭고한 성업(聖業)이다.

 

 아들이 검은 첼로를 메고 한 쪽 팔에는 가방을 들고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한 번은 저 녀석의 열 손가락 끝을 본 적이 있다. 하얗게 부풀어 속이 다 드러난 죽은 굳은살은 이미 그의 피부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이 굳은살 속에 사는 첼로의 근음을 기억하며 살고 있다. 시간 끝자리에 붙어 있는 흐느끼는 음들을 모아 오선지에 그리고 잘 다듬어 공명한 소리를 엮어 자신의 고뇌를 그물 삼아 인생을 건져내고 있다. 하루하루 도돌이표를 따라 따분한 시간의 경계를 걷고 있지만, 그는 청춘이다.

 

 청춘은 꿈을 먹고 산다지. 꿈은 허황하지만, 에너지를 준다. 꿈속에서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 벼랑 끝에서 떨어져도 날 수 있는 날개를 양어깨에 펼치고 저 절벽을 날아오르는 용기가 있다. 날다가 떨어져도 아무 상처 없이 회복이 가능한 것도 꿈에서 이루어진다. 꿈속에서는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이 가득하다. 실패의 담도 추락의 담도 희망이 들려주는 노래를 연주하면서 넘을 수 있는 때가 청춘, 곧 아들의 시간이다. 그는 2 첼로의 멤버인 루카 술릭 (Luka Sulic)이 비발디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를 첼로 버전으로 편곡한 것을 연주하는 변화무쌍한 열정의 나이에 와 있다.

 

 트렁크를 열고 그 큰 첼로를 집어넣은 청춘이 지금 내 옆에 앉아 있다. 뉴욕의 온 거리가 어둠으로 물들고 노란 조명이 밤의 별처럼 켜지며 세상을 다시 눈뜨게 한다. 유레카를 외치듯, 문득 스쳐 가던 생각이 말이 된다. 아들의 얼굴에 조명이 반사된 빌딩의 그림자가 비칠 때, 빌딩 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혼잣말을 되뇐다. “나는 청춘의 아버지다. 아들은 나의 청춘이다.”

 


 

 

대구 출생

Temple 대학교 약학과 졸업

2020년 워싱턴 문학 시 등단

2021년 워싱턴 문학 수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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