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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칼럼]옷깃에 머무는 가을
 
편집국   기사입력  2009/10/08 [19:05]
코스모스 꽃이 피는 가을은 바람도 서늘하다. 하늘은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처럼 파랗게 높아져만 가는 계절, 도심을 벗어나면 쉽게 만날 수 있는 코스모스는 귀뚜라미와 함께 가을의 전령사로 꼽힌다. 이맘때가 되면 몸살 나게 가을을 타는 사람들은 옷깃으로 가을을 마중 한다.

가을은 여인의 옷깃에 묻어서 온다. 지난여름의 후끈한 바람도 한순간 사라지고 없다. 이 계절에는 여인들도 화려한 단풍 색 옷감으로 몸단장을 한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 붉게 물든 느티나무의 색감도 여인들의 옷감에 그대로 드러나는 계절이 가을이다.

단풍이 아름답게 물이 든 공원에서 만나는 여인들의 화려한 옷매무새는 눈이 시린 하늘만큼이나 푸근함을 가져다준다. 텅 빈 곳간을 채우듯이 카메라 셔터가 연신 눌러지는 계절이다.
 
10월의 마지막 밤, 경주 반월성에서 만남을 약속한 연인들은 참 행복하다. 우수수 지는 낙엽을 등지고선 연인들의 모습은 어둠에 몸을 맡긴 가로등과 은은한 달빛이 있어서 더 멋스럽다.

일주일이면 2일은 강의가 있어서 경주를 간다. 출근하면서 만나는 경주는 갈 때 마다 치장이 새롭다. 봄 벚꽃의 화려함 보다도 조락의 계절을 마무리하는 나무들은 나목으로 남을 준비에 바쁘고 매달린 잎들은 고운물이 들어서 나름의 멋스러움이 있다.

한 잎도 같은 색깔의 물이 들지 않는다. 한 나무에 매달린 잎일지라도 오색으로 물든 단풍들은 각양각색이다. 어느 유명화가라도 이런 물감의 채색을 할 수가 없다. 오직 자연만이 연출해 낼 수 있음에 감동하게 된다.

경주는 단풍을 볼 수 있는 곳들이 수두룩하다. 그 가운데서 즐겨 찾는 곳이 반월성이다. 성안을 둘러 이어진 옛길을 따라 한 바퀴를 돌면 첨성대 입구가 나온다. 아쉽다면 바로 인근의 안압지를 찾아가보는 것도 괜찮다.

단풍은 박물관으로 이어지는 반월성 언저리를 중심으로 시작된다. 밤이면 곳곳에서 빛을 발하는 무지개 조명과 함께 신선이 노니는 공간으로 탈바꿈 하는 곳이 반월성이다.

야간강의가 끝나고 울산으로 오는 길목, 반월성은 고고한 멋스러움을 간직한 여인이 되어  소매를 붙들고 늘어진다.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들러 게 됐고 어느 해부터는 그냥 반월성 이라는 여인과 분탕 놀아나게 되고 말았다.

신라 천년의 역사를 묻어 둔 곳, 반월성의 자태는 멀리서나 가까이서나 변함없이 아름답다. 여인의 S라인이 살아나는 곳이라고 해도 탈이 없다. 그만큼 반월성은 내게 아름다운 여인으로 다가오고 말았다.

솔숲으로 둘러싸인 반월성 언덕배기는 군데군데 야생의 벚나무와 갈참나무가 자생하고 있어서 솔잎의 푸르름과 뒤섞여 뿜어내는 오색의 단풍은 형용하기가 쉽지 않다. 어느 여인의 옷매무새가 이토록 아름다울까, 아니 어느 여인의 S라인이 이 보다 더할까, 가슴가득 차오르는 흥분으로 반월성을 짓궂게 탐닉하고 만다.

신라 역사가 살아 숨 쉬는 현장에서 최근 드라마로 뜨고 있는 선덕여왕을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반월성과의 정분은 누구라도 금 새 신라인이 되게 만든다. 반월, 성곽의 모양이 반달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지만 완월보다 얼마나 여유 있는 이름인가.
반월성을 돌아오는 틈새 길에서 첨성대 주변의 코스모스를 보면 누구나 환장 한다는 말이 이해가 간다. 여기서 안압지로 이어진 코스모스 꽃길은 가을에 만나는 즐거움이고 기쁨이다.

계절의 수레바퀴는 쉼 없이 돈다. 인생이라는 고달픈 길도 쉬지 않고 가야 하는 떨쳐내지 못하는 길이다. 그 외로운 길에서 형형색색으로 치장한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는 기쁨은 팍팍한 일상에서 맛 볼 수 있는 모처럼의 여유로운 행복이다. 반월성 여인의 옷깃에 묻어나는, 단풍 물든 반월성을 찾아가는 날이 오매불망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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