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도 '영어마을' 같은 것이 있었을까.  '성호사설'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신숙주와 성삼문이 사역원 제조(堤調)로 제수되어… 한학강을 설치해서 학습토록 하면서 사역원 내에서는 우리말로 담화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근세에는 이원익과 이경석이 제조로 제수되어 품의를 할 때마다 반드시 한어로 말하도록 했다.…" 조선시대의 '사역원'에서는 이렇게 '제 1 외국어'인 중국어만 사용하도록 했다.  오늘날 방방곳곳에 생기고 있는 '영어마을'과 닮은꼴이었다. 

하지만 다른 점도 있었을 듯싶다. '사역원'에서는 아마도 중국 돈을 쓰고, 중국 음식까지 먹도록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면, 영어마을에서는 돈도 '달러'만 쓰고 식사시간이 되면 '밥'이 아니라 '파스타'를 먹기도 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원어민 강사의 '영어 지시'에 따라 쿠키도 만들어 본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서울에 3번째 영어마을이 세워졌다는 소식이다. 
 
'서울 영어마을 관악캠프'다. 보도에 따르면, 이 관악캠프는 기존 영어마을과 달랐다.  설계부터 영어교육에 맞춘 '맞춤형 영어교육시설'이다.  대지 2만300여㎡에 지하 1층, 지상 3층, 총면적 7040㎡나 되는 거창한 규모다.  30여 개 체험실과 도서관 등도 갖추고 있다고 했다. 

특징은 또 있었다.  '친환경'이라는 특징이다.  온 나라가 환경을 좋아하더니, 영어마을마저
'친환경'이었다.  그 교육 방법에도 '생태계 관찰'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걱정되는 게 있다.  관악캠프는 아이들을 관악산이나 낙성대공원으로 데리고 가서 '생태계'를 '관찰'시킬 것이다.  그 과정에서 풀이나, 나무, 곤충 이름까지 영어로 가르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아이들이 '나비'를 가리키면서 '버터플라이'라고 외칠지도 모르는 것이다. 서울의 두 번째 영어마을인 '수유캠프'를 만들 때에는 "영어로 생활하고, 영어로 꿈꾸고"라는 얘기까지 있었다. 
 
영어로 꿈까지 꾼다면 더 이상 한국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아무리 '영어 몰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구운몽을 쓴 김만중(金萬重)이 말했다. 

"…우리 시상과 감정을 표현하는데 한문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오늘날 우리나라 시문 쓰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나라 말을 두고 남의 나라 말을 쓰는데 급급하다.  이는 의미는 비슷하다해도 앵무새가 사람 말을 흉내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김만중의 지적처럼, 멀쩡했던 사람들이 '앵무새'가 되어 가는 것도 걱정이다.  그래서 씁쓸한 것이다. 

걱정은 또 있다.  영어에 몰입하다보면 다른 공부는 아무래도 덜하게 될 수밖에 없다.  역사 공부도 그럴 것이다.    

지금 일본은 '우리 땅' 독도를 가져가려고 '장기전'으로 나오고 있다.  아이들에게 왜곡된 역사관을 주입시키고 있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독도가 '자기들 것'이라고 따지고 들 경우, 역사를 배우지 못한 우리 아이들은 말문이 막혀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얼마 전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젊은층 가운데 절반 이상은 6·25 전쟁이 일어난 해가 '1950년'이라는 사실조차 제대로 모를 정도로 역사에 어두웠다.  그런데도 역사는 선택과목이다. 일제 때 러시아에서 발행된 우리말 신문이 있었다.
 
 이 신문은 이렇게 개탄했다. "…혀가 변하는 날에는 눈도 변하게 되며, 귀도 변하게 되며, 마음까지 변하게 된다.  아이들은 내나라 말, 내나라 글, 내나라 역사를 배우며, 나이 많은 사람도 가나다라 수십 줄은 익히며, 본국 역사 2권을 읽은 후에야 다른 말을 배우든지 말든지 할 것이니라.… 그렇지만 어찌하리오. 고국을 돌아보니 소학교 아이들의 일본어 배우는 소리뿐이오…."  뒤늦은 한탄이었다. 나라가 없어지더니 혀, 눈, 귀, 마음까지 달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