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음 토요일, 15불 어치 휘발유를 넣어 주고, 다시 형식적인 운전연습을 또 했다. 시험관이 ‘너 합격하기를 원하느냐’고 한마디를 하면 일사천리로 공갈을 칠 영어문장들을 정리하여 차곡차곡 머릿속에 챙겨 두었다. 만약 그의 높은 상관이 내 말을 못 알아들으면, 문장을 써 주려고, 아내 몰래 단어도 써 보고 외워 놓았다. 드디어 수요일 저녁이 왔다. 이번엔 젊은 시험관이 내게 싱글거리며 옆에 앉았다.
“미스터 쥬엉~. 나이스 네임! 오늘 기분 괜찮지?”
“옛서.”
“한국인이지? 한국인은 언제나 호감 가는 사람들이야.”
“댕큣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지, 이것저것 만지고, 재떨이나 서랍까지 뒤져 보며, 시험관이 나와 스스럼없는 척한다. 돈 10불을 재떨이 속에 놓아두든가 책갈피에 꽂아두면 모르는 척 집어가고, 합격시켜 준다는 말이 생각나서 불안해지려 들었다. 젊고 잘생긴 시험관이 벙글벙글 웃으며 나를 칭찬하니 운전도 그럭저럭 잘 되었다. 마지막 코스를 통과할 때, 시험관이 별안간 나한테 삿대질까지 하면서 화를 냈다.
“오른쪽으로 돌 때, 깜빡이 불을 안 켰단 말이야.”
“시그날 라이트요?”
“그래. 시그날이다 시그날! 어쨀래? 다 끝났다고 시그날도 안 주고 들어오니?”
내가 말대꾸할 틈도 안 주고 시험관은 불합격 사인을 해 주고 껑충 뛰어내렸다. 아내에게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이제 쥐구멍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떨어졌어, 여보.”
눈물이 나오려고 들었다. 현명하지 못한 남자가 모든 것을 아내에게 털어놓고 의논을 했으면, 얼마나 쉬웠으랴? 하나님이 어련히 알아서 우매한 남자를 스마트한 여자와 한 집에 살도록 마련하셨을까?
나는 혼자 순간순간 죽어가고 있건만, 세상은 잘도 돌아갔다. 해는 뜨고 출근 시간은 퇴근시간으로 연결되고, 영어 배우러 갔다가 아내 퇴근하면 저녁 먹고 잠자야 했다. 지옥 속 같았지만, 또 며칠이 지나갔다. 또 토요일에 15불을 들여 친구 차에 휘발유를 채워 주고, 하기 싫은 운전연습을 또 했다. 또 수요일 저녁이 되어,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황소처럼 엉기며 끌려가, 시험장으로 쑤셔 넣어졌다. H는 열 번 봐서라도 뇌물 안 주고 제 실력으로 붙어야 된다고 나를 격려했다.
“한국 사람들은 모두 10불씩 돈 주고 운전면허증 따는 사람들로 미국사회에 알려져 있으니 그런 나라 망신이 어딨어?”
나도 고마운 H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어떻게 해서라도 돈 안 주고 운전면허증을 따겠노라고 다짐했다. 지난주에 만났던 그 젊은 시험관이 또 탔다. 그는 내 서류를 훑어보더니, 대뜸 떫은 표정을 지었다.
“이번이 세 번째로 마지막 기회로군.”
“옛서.”
“옛서는 무슨 놈의 옛서니? 흐응 잘 해 봐라! 빨리 가기나 햇.”
출발할 때부터 시험관은 금방 내게 따귀라도 때릴 기세로 괜히 화를 냈다. 그러더니 그는 침묵일색으로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옆 좌석에서 구역질 참는 표정을 짓던 시험관은 중간지점에서 별안간 화를 내며 내리겠다고 소리소리 질렀다. 내가 운전하는 것이 너무 위험하여, 더 이상 내 차를 타고 있을 수가 없다고 악을 썼다. 위험하다니? 위험이 뭐야? 내가 말을 잘못 알아들었겠지? 주위에는 자동차가 전혀 없고 평평한 시험장에서 굼벵이처럼 달리는 내 차가 위험하다? 아무튼 시험관이 이토록 화를 내며, 차에서 내리겠다고 하니 차를 세워야 했다. 이제 또 떨어지는 것은 보리밭 둑에서 은하수 바라보듯 너무 확실해졌다.
“이번이 저에겐 마지막 기횐데요.”
나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그렇고말고~. 내가 자알 알지, 이번이 마지막 기횐 걸 내가 더 잘 알지.”
인자한 어머니역을 맡은 연극배우처럼, 순간적으로 시험관의 음성이 자상하게 바뀌었다. 어차피 10불을 먹긴 먹을 것이다. 시험관이 내 지갑에 돈이 두둑이 있는가, 10불짜리 한 장만 달랑 있는가 알아보려는 듯, 그는 목을 빼고 내 지갑을 들여다보았다. 10불을 빼앗아먹으면 콧노래가 나올 돈 두둑한 사람인가, 10불 빼앗으면 좀 마음 짠할 불쌍한 젊은이인가 감정하나보다.
나는 10불짜리인 줄 알고, 지폐 한 장을 꺼냈는데, 얼결에 다급하여 20불짜리 한 장을 꺼냈다. 시험관은 돈을 불빛에 비춰 보고, 20불짜리임을 확인하더니, 의외의 횡재라는 듯 활짝 웃었다. 뇌물로 받는 돈은 우선 슬쩍 집어넣고, 나중에 얼마짜리인가 확인하는 것이 상례라고 알고 있던 나는 시험관의 대담성에 놀랐다.
“헤이, 미스터 쥬어~엉. 나이스 가이. 내가 알고말고. 너는 좋은 운전자야.”
그는 흥분된 음성으로 나를 툭툭 건들며 태도를 완전히 바꿔 내게 아첨을 했다. 아니, 별안간 이게 무슨 소리야?
“익스큐스 미?”
“그으읏 드라이버란 말이야. 난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넌 좋은 운전자지?”
한국 사람들과 달라서 미국사람들 자체가 좀 얍삽하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돌변하는 시험관의 태도를 보니, 분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황새 잡기를 포기한 지렁이가 젖은 땅속으로 몸을 피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미스터 쥬어엉~. 조오기 정지표지판 앞에서 서야지? 옳지! 잘한다. 여기서는 좀 더 빨리 가도 돼. 알잖아, 미스터 정? 그래 좋고! 조옿고! 오옳지, 좋은 운전자.”
H에게 합격했다는 울적한 대답만 했을 뿐, H와 나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무거운 침묵만을 유지했다. 한 사람은 비굴하게나마 지옥 같은 스트레스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묻혀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이번 주부터는 본인 돈으로 휘발유 채울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는 나 스스로의 등허리를 한 방 치며 속으로 뇌까렸다.
“와앗 따 헬스 고잉 안! 세상에 손해 보는 장사 어딨니? 숙제 하나 끝냈잖아?”
1). 순수문학 소설 당선으로 등단(2006년)
2).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 공모 소설당선(2007년)
3). 한국산문 수필공모 당선(2010년)
4). 경희 해외동포 소설 우수상(2010년)
5). 서울 문예창작 소설 금상(2013년)
6). 재외동포 소설 우수상(2014년)
7). Chicago Writers Series에 초청되어 소설 발표 Event 개최(2016년)
8). 국제 PEN 한국 해외작가상(2016년)
9). 해외 한국소설 작가상(2023년)
10). 제 4회 독서대전 독후감 공모 선정 소설(2023)
11). 한국문협 회원, 국제 PEN회원, 한국 소설가 중앙위원
12). 시카고 문인회장 역임.
13). 시카고 문화회관 문창교실 Instructor
14). 현 미주문협 이사
저서: 단편소설집---“발목 잡힌 새는 하늘을 본다” “소자들의 병신춤” “달 속에 박힌 아방궁”
중편소설집---“나비는 단풍잎 밑에서 봄을 부른다”
수필집---“여름 겨울 없이 추운 사나이”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 “눈물 타임스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