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위 60도에는 애인이 있다
애인은 저무는 걸 거부한다 저녁을 거부한다 저녁도 먹지 않는다
애인을 닮은 해가 북쪽 창문 아래 서 있다
창문 안에 애인을 둔 남자처럼 이른 봄의 표정으로
오지 않을 늦가을의 눈빛으로
지평선을 밀어내고 있다
애인 때문에 북위 60도에서는 해가 지지 않는다
그래서 북위 60의 저녁은 북쪽으로 더 기울어야 한다
삼나무를 검정으로 물들이려면
극점의 손가락으로 애인의 등을 하얗게 태울 수 있을 때까지
애인이 북극곰이 될 때까지
저녁은 그렇게 기울어야 하는 것이다
북위 60도 너머로 훌쩍 기운 애인이 있다면
삼나무 숲이 뱉어 놓은 그늘을 모두 걷어내는 애인이 있다면
삼나무 이파리가 만드는 작은 구멍들 속에서 지는 해를 나란히 볼 수 있는 애인이 있다면, 그러나
저녁이 오지 않는 건 애인이 기우는 법을 잊었기 때문일까
누군가 몰래 밤을 밤처럼 까먹고 있기 때문일까
북위 60도에서는 저녁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자
빙하가 울면 4만 년 전 벌레가 깨어나는 것처럼
모든 저녁이 모두 기울면
모든 애인들은 벌써 지평선에 누웠을 테니까
<시작노트>
애인은 지금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에 있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애인은 북위 60도에 있다. 따라서 애인은 만지고 느끼고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애인 때문에 북위 60도에서 해가 지지 않는다". 북위 60도는 사람이 살 수 있는 마지막 선이다. 또한 북위 60도는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환상적인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애인 때문에 해가 지지 않는다는 특별한 의미, 간절하게 원하면 소원은 이루어질 것이다. 애인이 어디에 있든.
원도이
본명 원인숙
강원도 횡성 출생
2010년 농촌문학상 수상
2019년 《시인동네》 「모자의 방식」 외 4편으로 등단
2020년 시집 『비로소 내가 괄호 안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2024년 시집 『토마토 파르티잔』(도서출판 달을쏘다)
202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발표지원) 수혜
2024년 제2회 경북문예현상공모 대상
2024년 제9회 동주문학상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