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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다. 쿵 소리가 났겠는가? 안났겠는가? 이 질문이 매회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서스펜스 스릴러물입니다. 영국 경험론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이성주의와 물리학적인 세계관에는 반대하는 이상주의 관념론의 선구자인 찰스 바클리가 던진 말입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매회 반복적으 등장하면서 클라이맥스로 갈수록 그 의미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 하는 장치 중 하나입니다. 물론 철학자 바클리가 주장한 존재하는 것은 지각된다는 것이다 라는 철학적인 명제를 이 드라마에서 규명하고자 한 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인간의 양심과 선택에 대한 질문을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극본이 그리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매우 뛰어나서 드라마가 말하려고 하는 의미를 그나마 잘 전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드라마에는 두 개의 사건이 등장합니다. 평화롭던 어느 여름날 은퇴한후 펜션을 운영하던 전영하에게 신원 미상의 여성이 찾아옵니다. 어딘가 수상하지만 화려하고 음산해 보이는 이 여인은 어린 아들과 함께 숙박을 합니다. 그러나 다음날 여자는 말없이 사라지고 그녀가 머물렀던 방은 퇴실한다는 말도 없이 소독약으로 청소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방에서 발견된 LP판에는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불안한 기운을 감지한 그는 차량CCTV에서 급하게 커다란 짐을 간신히 싣고 도망치듯 떠나는 여자를 발견합니다.
또하나의 사건은 20년전 사건입니다. 구상준은 온갖 고생을 하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 첫눈에 반해 결혼을 했고 열심히 모은 돈으로 강이 보이는 모텔을 구입해 운영중입니다. 그러나 어느날 길거리에 차를 세우고 갈등하는 손님을 호객하는데 알고보니 그 손님은 연쇄살인범이었고 그가 운영하는 호텔에서 토막살인을 저지릅니다. 범인은 잡혔지만 살인 호텔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집안이 풍지박산나게 됩니다. 이 두개의 사건은 윤보민이라는 당시 새내기 순경이었던 여경이 있는데 그는 현재 전영하가 살고 있는 펜션 마을로 새로 부임해 온 파출소장입니다.
이 드라마의 영어 명은 The frog입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의 그 개구리입니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전영하와 구상준은 시간은 다르지만 지나가던 연쇄살인범에 의해, 또는 어느날 불쑥 찾아온 불청객에 의해 인생의 파탄나고 모든 것이 끝장날 수 있는 위기를 겪습니다. 드라마에서 구상준은 어떻게든 연쇄살인범의 흔적을 지우고 새롭게 출발하려 했지만 모텔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흉가가 되어버리고 설상가상으로 모텔을 구입하기 위해 빌린 대출금을 갚지 못해 경제적으로 완전히 파산하게 되고 아내는 자살하고 자신은 그 충격으로 요양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전영하는 애써 펜션에서 있었을지 모르는 살인의 흔적을 지웁니다. 마음 한켠에는 양심의 가책이 있고 신고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자신의 모든것이 되어버린 펜션에 누가 될까 애써 외면합니다. 여기서 주인공은 내적 갈등을 겪는데 다시 그 이상한 여자가 찾아오면서 불안은 끔찍한 재앙이 되어버립니다. 아무도 없는 숲에서 커다란 나무가 쓰러지면 분명히 소리가 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 장면을 나 혼자만 했고 내가 그 소리를 인식하지 않은채 한다면 나무가 쓰러진 것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주인공이 살인을 의심하면서도 애써 핏자국을 모두 지우고 완전히 청소를 끝마친 이유는 의심을 확인하는 단계를 건너뛰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양심의 가책에서도 도망가고 혹시 모를 끔찍한 사건으로 인해 자신에게 올 수 있는 피해도 막았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그러나 구상준의 모텔에서 연쇄살인을 한 범인은 자서전을 쓸 준비를 하며 자신의 과거에서 벗어납니다. 그를 지켜본 구상준의 아들은 온갖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여전히 과거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못한채 연쇄살인범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밉니다. 그리고 전영하에게는 그 이상한 여자가 찾아와 그가 덮어버린 사건을 들춰내고 주인공을 공범으로 몰아갑니다. 인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 우길 수 있지만 실제는 일어난 일이고 그 일어난 일을 덮으로 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뜻같습니다.
만약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다 감수하고 바로 신고를 했더라면 전영하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자신은 물론 자신의 가족과 지인까지 위험에 빠지고 나서야 비로소 모든 것을 끝낼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철학자 바클리의 고민과 다르게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커다란 나무가 무너졌고 그 소리를 들은 사람도 있지만 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신의 의심을 덮어버립니다. 인식하지 못한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을 인지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영적인 것을 넘어서도 현실 세계에서도 자신을 속이는 결정을 할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될때 우리의 영혼은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내적 갈등에 휩싸이게 됩니다. 반드시 소리가 나야 하는데 나혼자만 들었다고 해서 그 소리와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으면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을 재미로 파헤치는 파출소장 윤보민은 괴물의 모습을 찾는 것을 재미삼아 합니다. 정의로움과 아픔때문에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행동이라기보다는 가슴뛰는 재미를 위해 사건을 쫓아다닙니다. 이 드라마에서 범인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은 진짜 양심을 가지고 인간다운 행동을 하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범인이 잡히고 심지어 죽기까지 하면서 모든 사건이 해결되지만 여전히 돌에 맞은 개구리들의 처분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작가는 파출소장의 입을 빌어 범행을 저지르려 했던 장성한 구상준의 아들에게 '진짜 돌던진 사람을 못잡으면서 개구리를 잡지 않으려 한다'라는 말을 남깁니다. 의도하지 않은 억울한 피해를 입은 개구리들은 잡고 진짜 돌을 던진 나쁜 사람은 잡지 못하니 말입니다. 영적 상태와 그로 인한 운명을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출처] 2924년 9월 27일 오늘의 드라마 :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모완일 (문헌정보팀 WE) | 작성자 문헌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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