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주머니는 차가웠지
내 손을 한 번도 넣어주지 않았지
겨울이 아닌데도 내 마음은
터진 손등처럼 갈라져 있었지
당신이 출타한 어느 날
함부로 주머니를 뒤졌지
짐작대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지
나중에는 당신이 차가워서 준 게 없는지
줄 게 없어서 차가운 건지 헷갈렸지
당신 주머니 따뜻했던 적 있지
임용 통지서 받고 함께 돌아오던 날
시내버스엔 한 자리만 남아 있었지
―배씨 한잔했구먼, 어디 다녀와?
―예, 울 아들이 이제 선생이 되었슈
당신이 발 벌려 의자 가운데 내주던 그때
내 몸에 닿던 따뜻한 당신 주머니
손등처럼 내 마음을 또 갈라지게 한
늘어져버린 당신의 씨앗주머니, 두 쪽
『목화밭 목화밭』(달아실 2021) 수록
<시작노트>
큰 아이의 입학 전날이었다.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여서 짐을 모두 싸 가지고 가서, 학교 앞의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 아이는 휴대폰을 보랴 밥을 먹으랴 정신없었고, 나는 고기를 자꾸 아들 앞으로 밀어주느라 정신없었다. 코로나 시국이라 방이 어떻게 생겼는지, 같이 지내는 친구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도 없어, 기숙사 앞에서 뒷모습만 지켜보았다. 핸들을 돌려 홀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엔, 어렵게 농사를 지어 나를 가르치는 것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내게 늘 엄격한 아버지가 싫었다. 내가 아버지가 되어서야 그 과묵함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깨달은 것은 아버지와 나와 내 아들은 따뜻한 ‘씨앗 주머니’로 길게 이어져 있다는 것, 그 사실이었다.
배세복
1973년 충남 홍성 출생.
2014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몬드리안의 담요』(시산맥 2019), 『목화밭 목화밭』(달아실 2021)
<문학동인 Volume>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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