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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칼럼> 의로운 기술, 도자기 (2)
 
김재범 논설위원 도예가   기사입력  2021/07/26 [16:32]
▲ 김재범 논설위원 도예가     © 울산광역매일

 `시누아즈리(chinoiserie)`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후반에 걸쳐 유럽에서 유행한 아시아문화 중심의 중국 열풍을 나타내는 말로 통한다. 근세 서구도자기 산업에 있어서 중국의 영향은 압도적이었다. 여기에는 유럽의 왕실이 도자기를 비롯한 정원, 건축, 회화, 실내장식과 음식, 옷에 이르기까지 앞다퉈 중국문화를 수집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자연스럽게 유럽의 문화 일상으로 자리매김하는 배경이 된다. 400년 전 자기는 유럽인들이 중국을 바라보는 하나의 창이었다. 특히 도자기에 새겨진 중국의 인물과 풍경은 아시아 대제국에 대한 동경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아일랜드 국립박물관은 이러한 분위를 뒷받침 할 수 있는 매우 특별한 도자기 한 점을 소장하고 있다.

 

 `폰트힐 베이스(Fonthill Vase)`라 불리고 있는 백자 한점이다. 유럽으로 전해진 최초의 중국 원시대의 도자기로 알려져 있다. 1300~1340년 중국 장시성 징더젠에서 생산된 것으로, 14세기 초부터 현재까지의 행적이 유일하게 문서에 기록된 도자기이다. 기록에는 헝가리-이탈리아-프랑스-영국을 거쳐 아일랜드로 전해졌다고 한다. 유럽인들은 이 매끈하고 단단한 자기를 직접 보고서야 비로소 마르코폴로의 묘사를 이해할 수가 있었다. 마르코폴로는 이 도자기를 `포셀린`이라 불렀고, 오늘날 `자기`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포셀린(porcelain)`은 단단한 조개껍질을 뜻하는 라틴어 포셀리나(porcelaina)에 비유한 데서 유래한다. 그런데 도자기 한 점을 통해 유럽 사람들은 마르코폴로가 한 이야기들이 결코 허풍이 아님을 알게 된다. 

 

 유럽인들은 마르코폴로가 중국 자기를 처음 소개했을 때 믿기지 않았던 그때로부터 300년 만에 직접 주문을 넣기에 이른다. 1614년 겔더랜드호 주문 송장은 이것을 증명해준다. 크기가 다양한 접시, 큰 사발, 컵과 컵 접시 등 총 주문량이 7만 점에 달한다. 지금의 환율로 따져 보더라도 백만 달러에 달하는 규모다. 앞서 1602년과 4년 네덜란드 함대가 포르투갈 배 산타카타리나를 나포했을 때 그 배에는 많은 자기가 실려 있었다. 네덜란드 상인들은 자기를 경매에 부쳐 큰 돈을 벌게 된다. 그때부터 도자기 무역의 가능성을 확인한 네덜란드는 포르투갈이 관장하던 인도양의 항로를 하나씩 장악해 나갔고, 아시아 무역의 주역이 네덜란드로 바뀌게 된다. 프랑스와 영국 왕실에서도 대사를 시켜 많은 양의 중국자기를 구입하기에 이른다.

 

 유럽은 200년 동안 16세기 명나라의 청화백자로 건물을 치장하는 것이 붐이었다. 그 당시 청화백자를 소유한다는 것은 자신의 재력을 뽐내는 수단이 되었다. 17세기부터 18세기에만 대략 6천만 점의 자기가 수입되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네덜란드 인구가 200만 명이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엄청난 규모이다. 북유럽 물류의 중심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크리스티 경매장에서는 모잠비크 앞바다에 빠진 포르투갈 배에서 인양한 중국자기 경매가 종종 진행된다고 한다. 침몰한 포르투갈 배에서 건져 올린 자기를 암스테르담 경매에 부치는 일은 오랜 전통이다. 요하네스버그 아프리카 박물관에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준 특별한 식물문양이 새겨진 부용수라는 그릇이 소장되어 있다. 

 

 부용자기는 17세기 퓨터라는 금속식기와 모양이 같아 유럽인들이 매우 좋아했다. 당시 유럽에는 어떤 그릇이 사용되었을까.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탈리아 밀라노 산타마리아성당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 15세기 식탁을 그려 넣었다. 이 그림을 그래픽 기법으로 분석한 결과 500년 전 유럽인들은 유리잔과 주석 접시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식탁에서 읽을 수 있듯, 유럽은 고대 로마제국 이후 르네상스 시대까지 1천년이상 변화가 없었던 고립의 시대를 살고 있었다. 유럽인들이 자기를 통해 눈뜨고 왕실 재정이 바닥을 보일 정도로 열광했던 배경으로도 읽힌다. 명나라는 도자기 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쌓으며 만리장성을 굳건하게 축조하기에 이른다. 그 당시 명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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