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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흐르는 아침> 절망처럼 자라는 우기가 내 몸을 눅일 때
 
박진형 시인   기사입력  2023/01/24 [19:18]

잠글 수 없는 빗물이 유리창을 두드려 밖을 내다보다 이내 고개 떨굴 때 시계는 불투명하여 누설되지 않습니다

 

인력시장 못 가니 며칠째 한숨입니다

 

눈시울 뜨거워지고 바짝 목이 타는데 마른 몸 꿈꾸고 나면 햇볕이 돋아날까요

 

바람에 유리창이 일순간 덜컥입니다

 

마르지 않는 빨래가 건조대에서 시들고 수심이 깊어집니다

 

축대는 비에 젖고 그늘진 곳일수록 전운이 감돕니다

 

밑 모를 두려움이 반지하로 넘쳐흘러 발치가 아찔합니다

 

술병은 나뒹굴고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싸워야 하는 수중전

불현듯 회오리 불어 그늘이 술렁입니다

 

방안을 점령한 것은 맴도는 침묵뿐

 

음습한 목소리가 배경으로 돌아가면 빗방울에 갇힌 하루가 희미하게 번집니다

 

손끝은 떨리기만 하고 숨결은 아득하고 유례없는 누수인지 수위가 높아가는데 저승은 멀기만 하고 이승은 꿉꿉합니다

 

습기가 절망처럼 자라 부은 몸 휘청입니다

 


 

 

▲ 박진형 시인     © 울산광역매일

<시작노트>

 

시인은 차분하고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힘들게 삶을 꾸려 가는 소외된 사람들을 위로하고 지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고뇌하고 아파하는 사람들과 공감하며 세상 모든 사람과 소통하려고 한다. 치유의 시편이고 위로의 운문이다.

이 시조의 주제는 ‘인력시장 못 가니 며칠째 한숨입니다’에 그대로 드러나듯 새벽 인력시장에서 발탁되지 못해 반지하 집에 돌아온 가장의 절망감이다. 일용 품팔이들만이 아니라 이 시대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지니는 삶의 무게를 그리고 있다. 시대에 뒤떨어지고 소외된 인간의 눅눅한 절망감, 그 구석구석을 여러 형태로 되풀이 떠올리며 깊이 있게 묘사하고 있다. 실감과 서정을 바탕에 깔아 현실 세계의 지난한 삶의 풍경을 호소력과 공감력 있게 그리고 있다.

 

 

박진형 

 

2016년 『시에』로 등단. 2019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시란 동인, 문학동인 Volume 회장 역임, 용인문학회 편집위원, 시에문학회 부회장. 시조집 『어디까지 희망입니까』

pjh196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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