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뜻하지 않은 때 갑자기 도청에서 ‘사업체 환경특별점검’이 나와 회사는 바짝 긴장했다. 과장이 신입사원인 나더러 담당직원이라 지명하며 수검에 응해라 지시했다.
환경 이라고는 ‘ㅎ’자도 모르는 그 방면으로는 문외한門外漢인데 느닷없이 담당 이라니, 머리가 띵- 앞이 캄캄했지만 피할 방법은 없었다.
폐수배출 방지시설에서 발생한 찌꺼기인 오니(汚泥=sludge) 처리 절차상 문제가 지적되었다.
‘폐기물 위탁시 운반차량에 탑승 동행하여야한다’는 규정 미준수로 법 위반이라 했다.
‘처리업자에게 위탁처리 하였기에, 불법투기 한 것이 아니지 않으냐?’ 고 항변해 봤으나 소용없었다.
‘그러면 사장에게 직접 받아야 되겠구먼!’ 하고 윽박지르며 자인서 용지를 눈앞으로 디밀며 ‘작성 날인하라’고 하는 상항에서는 더 버틸 수가 없다고 판단하였고 과장에게 경과보고 후 자인서에 서명 날인 하였다.
점검 공무원이 돌아가자마자 ‘자인서에 날인 한’ 것 때문에 과장이 난리를 쳤다. 조금 전 날인 해줘라 해놓고선... 사태가 곤란해지니 말단사원인 나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자인서를 찾아오라, 못 찾아오면 옷 벗을 각오를 하라’ 했다.
공무원은 지방 출장 시 지정 숙박시설에 투숙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다음날 새벽 첫차를 타고 00시에 도착하여 모텔로 찾아 들어갔다.
‘한 번만 봐 달라, 안 봐주면 나는 옷을 벗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처자식이 딸린 몸이라 당장 생계가 곤란하다’ 며 무릎을 굻고 애원했다.
그러고 있자니 한심스럽기 짝이 없고 주어진 처지가 비참하여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한동안 ‘안 된다’만 연발하며 요지부동의 자세가 간곡한 눈물을 보았는지 허물어지며 ‘이번 한 번만...’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자인서를 증거물로 가져가서 과장에게 보여야겠다는 욕심이 생겨 자인서를 돌려달라고 했으나 ‘그건 절대 안 된다’ 했다.
그러면 내가 보는 앞에서 찢어 없애주면 좋겠다고 부탁하니 ‘허~허, 이 사람 보게, 이러면 되겠냐?’ 며 자인서를 가로 세로 짝 짝 찢어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감사하다며 몇 차례나 방아깨비처럼 고개를 숙이고는 일어서 나오며 문을 닫는 척하다 손가락 두 개가 들어갈 틈을 두어 완전히 닫히지 않게 다시 살짝 밀어 둔 채 나왔다.
맞은편 방이 비워 있음을 확인하고 들어앉아 온 신경을 앞방에다 곤두세우고 있던 중 아니다 다를까 샤워하는 물소리를 듣고 앞방으로 재빨리 침입한 후 쓰레기통속으로 손을 넣어 종이와 쓰레기가 잡히는 데로 한 움큼 집은 다음 캥거루 새끼 다루듯 호주머니에 넣고 2층 계단을 단숨에 뛰어 내려와 모텔을 빠져나왔다.
회사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호주머니에 들어있는 쓰레기와 종이조각을 만져보면서 흐뭇한 미소와 함께 한편 비참하고 서글픈 생각에 만감萬感이 교차하였다. 한편 이제부터 어떤 서류에도 서명날인을 할 때는 더욱 꼼꼼히 살펴보고 나중에 벌어질 일을 예상해 보자고 다짐하였다.
회사에 도착한 후 퍼즐(puzzle) 게임을 하듯 조각을 맞추니 「자인서」라고 인쇄된 부분과 ‘서명날인’ 이 그런대로 알아볼 수 있어 상태가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A4 용지에 정성 들여 풀칠해 붙인 자인서를 과장에게 보고하여 과장이 만족을 표시하였기에 그날 옷을 벗지 않았고 이를 계기로 더욱 철저하고 빈틈없는 HSE (Health Safety Environment 보건, 안전, 환경) 업무를 맡아 건강하게 정년을 맞을 수 있었던 게 아닐는지... 되새겨본다.
본명: 박성학
출생지: 부산, 천마산자락에서 나고 자랐다
거주지: 울산에 눌러앉아 ‘글’하고 잘 놀고 있다
이메일: psh7647@naver.com
시집 『시시각각』
동시집 『노란하늘』
울산시인협회 회원
‘시산맥’ 특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