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내려다본 라스베이거스는 모랫바닥 위에 그려진 아이들의 소꿉놀이 터 같다. 그러나 땅을 디디고 난 후로는 시간이 갈수록 섬뜩할 정도로 인간 의지의 놀라움을 실감한다.
360도 삥 둘러 언덕 같은 나지막한 산으로 싸여 있고 아무리 눈여겨봐도 나무 한 그루 찾아볼 수 없다. 산 가까이 가서 보니 바윗덩이만 옹기종기 모여 서 있고 그 아래에는 모래가 수북이 쌓여있다. 화씨 100도보다 높은 뜨거움에 바위 껍질이 누룽지같이 벗겨진다. 살랑거리는 바람결에 날려 이곳저곳에 자유로이 씨를 뿌리며 모래 언덕을 이룬다.
그런 모랫바닥 위에, 멀리 있는 강물을 끌어대어 인공 연못을 만들었다. 골프장을 만들고 각종 꽃나무가 정원에 무성하다. 야자수 가로수가 늘어선 아스팔트 길 위엔 무언가에 홀린 듯 항상 인파로 북적거린다. 카지노를 비롯한 온갖 오락장은 모래 위에 세워진 신기루다.
실제로 이곳은 뭐 하나 내놓을 만한 것이 없다. 그랜드캐니언 같은 자연공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역사 유물도 없다. 그런데도 세계 곳곳에서 밀려드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공항도 세 군데로 나뉘어져 있다. 그마저도 모자라서 인근에 또 다른 공항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중국 사람들로 보이는 한 무리가 버스에서 우르르 내린다. 줄지어 객실로 향하더니 얼마 후 여장을 푼 듯 대부분 실내화 차림으로 삼삼오오 오락장을 기웃거린다.
화려한 볼거리와 흥미로운 오락과 게임으로 호기심을 잔뜩 부풀게 한다. 개중에는 지나친 욕망으로 패가망신하는 사례도 적지 않지만, 친절하고 자상하고 극진한 서비스는 다시 오고 싶은 열망을 품게 한다. 돈을 써도 아깝지 않다는 낭만마저 안겨준다.
“소비가 생산”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이곳은 저절로 세워진 것이 아니다. 오락과 투기를 좋아하는 몇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시작했다. 굽힐줄 모르는 끈기와 노력으로 무(無)에서 유(有)를 이루어 낸 의지의 산물이다. 수많은 어려움과 좌절의 고비를 넘기면서 만들어낸 기적의 증거다.
사막 위의 낙원을 선전이라도 하는 듯, 꽃 머리를 허밍버드가 선회한다. 펄럭이는 날개 사이로 허무와 절망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지난날들이 아른거린다.
풀뿌리 나무껍질로 보릿고개를 넘는 것도 보았고 6.25 사변의 비참함과 4.19혁명, 5.16쿠데타를 겪었다. 자유와 정의라는 단어 자체가 왜곡되고 행복이란 말도 실종되었었다. 오직 가난에서 헤어나는 것만이 소원이요 삶의 전부였던 때 이민을 왔다.
변해도 크게 변했다. 너무나 먹을 게 많아서 무엇을 먹을까 걱정인 세상이 되었다. 다른 사람의 자유를 무시하지 않고 남에게 해만 끼치지 않는 한 무한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정의가 무엇인지를 실감하고 신용이 자산인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
옛 속담에, 멀리 외출하려면 신발과 우산 그리고 거짓말은 꼭 챙겨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금 내가 사는 이 세상은 거짓말쟁이가 가장 치욕적인 욕이다. 이런 세상에 내가 이바지한 것은 하나도 없다. 나는 다만 행운아일 뿐이다.
타향살이를 해봐야 고향이 그립고, 집을 나서 봐야 스위트홈을 생각하게 된다. 부모 곁을 떠나봐야 부모의 은공을 깨닫게 되듯 라스베이거스에서 얻은 교훈이 크다. 지금 내가 사는 서북미 지역의 자연환경은 천혜의 낙원이다. 감사의 제목이다.
오직 모래만이 전부인 황량한 사망이 낙원으로 탈바꿈한 배경을 생각해 본다.
모래알 같은 세상 한탄만 할 일이 아니다.
미국 와싱턴주 밴쿠버 에서
2013년 제9회 뿌리문학신인상 수필부문 우수상 수상
뿌리문학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