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앉은 나팔꽃 화단에
어둠이 눕는다
고개 숙인 꽃잎 위
달이 오른다
멀리 보이는 창
신호등 깜박거린다
너의 그리움이
안으로
말리고 있다
적요 속
등 하나 건다
<시작노트>
짧은 호흡 속에서도 긴 여운을 남기는 시가 여기에 있다. "나팔꽃 화단"의 "꽃잎"과 "멀리 보이는 창"이 형성하는 고즈넉하고 아늑한 분위기. 이 시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크게 두 개의 계열로 구분하자면 하나는 `빛`의 계열이고, 다른 하나는 "어둠"의 계열이다. `빛`의 계열에 해당하는 어휘로는 "달", "신호등", "등 하나" 등이 위치하고, `어둠`의 계열에 속하는 어휘로는 "어둠"과 "적요"가 제시된다.
`달`, `신호등`, `등 하나` 등 이 시에 등장하는 `빛` 계열 어휘는 너무 밝고 강렬한 빛을 발산하는 대신 은은하고 잔잔한 빛을 내보낸다. 어둠, 적요 등 이 시에 등장하는 `어둠` 계열 어휘는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측면에서 다소곳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번 시의 제목인 "저물녘"은 4연 1행의 단어 "그리움"과 연결되면서 "너"라는 인물을 소환한다. 경계의 시간으로서의 `저물녘`을 형상화해본다.
이정숙
- 서울 출생
- 시인, 시 낭송가
- 2015년 『호서문학』 우수작품 신인상 등단
- 시집 『뒤돌아보면, 비』(2019) 『오늘이라는 방』(2024)
- 목원 문학상 수상
- 한국 낭송 문학 대상
- 2019년, 2024년 대전문화재단 문학 창작지원금 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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