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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흐르는 아침> 보수동 책방골목
 
이송희 시인   기사입력  2024/11/04 [16:53]

나는 다시 어두운 행간을 서성이네

걷다가 놓쳐버린 지난 세기의 구절들

 

불안을 뒤적이면서 

손끝으로 길을 읽네

 

그 어떤 수식도 없이 간결했던 우리의 말

날을 세운 문장은 어디론가 끌려가고

먼지 낀 갈피 속에는 숨 죽은 목소리

 

골목 끝 마지막 장에 내간체로 살던 그가

빛바랜 문단 사이로 비틀비틀 걸어오네

그 시절 추운 언어를 부둥켜안고 우네

 

깨진 창문 안에는 몰래 읽던 역사책들

불온한 시대의 페이지를 접고 쓰네

 

서로가 참고문헌이 되어 

길의 목록을 만드네

 

- 이송희, 『내 말을 밀고 가면 너의 말이 따라오고』, 작가, 2024.

 


 

 

▲ 이송희 시인

<시작노트>

 

 진리와 정의를 품고 쪼그려 앉아 책을 읽던 책방 골목의 풍경이 저물었다. 서점에서 책을 보며 친구를 기다리던 시절은 전설이 되어가고 있다. 옆 사람도 경쟁자가 된 시대의 행간에서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아름다운 꿈을 읽어낼 수 있을까? 화면을 터치해 필요한 대목만을 복사하여 붙여 넣으면 해결되는 편리한 세상이다. 문장에 밑줄을 그어가며 의미를 탐색하고 비평하는 노고 대신 이제는 글을 귀로 듣기도 한다. 가야 할 길은 멀고 눈앞은 깜깜하다. 그 어둠을 견디며 밝히는 선생님들의 고군분투가 눈 앞을 가린다. 겹겹이 쌓이는 희생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할까. 헌책방들이 모여 있는 보수동 거리를 지나며 지난 세기 지식의 창출과 정의 구현을 위해 몰래 숨어 책을 읽던 이들을 떠올려 본다.

 

 

이송희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열린시학』 등에 평론을 쓰며 작품 활동, 제20회 고산문학대상,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 등 수상. 시집 『내 말을 밀고 가면 너의 말이 따라오고』, 『대명사들』 외 5권, 평론집 『유목의 서사』 외 4권, 연구서 『현대시와 인지시학』, 그 외 저서로 『눈물로 읽는 사서함』 등이 있음, 전남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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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11/04 [16:53]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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