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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흐르는 아침> 비워진 집
 
이숙희 시인   기사입력  2024/11/07 [17:45]

비워진 집에 가을이 왔다

감나무 아래 널브러진 홍시

깜장개 지푸라기를 뒤집어쓰고 쳐다본다

정지간 옆 장독대

빈 항아리 엎어 놓은 뚜껑 위로

길고양이 숨죽이고 지나간다

뒤안 댓잎 흔드는 바람

깨어진 독을 심은 작은 우물은

나뭇잎으로 덮혔다

퍼내지 않는 우물은 더 시상 샘솟지 않는다

 

이 집 주인은 자그마한 여자였다

홍시가 떨어지면 두 개 되기를 기다렸다

스텐 밥공기에 홍시를 담고

우물 아래 쪼그려 앉아 끼니를 대신했다

앞날 계획보다 과거 기억만 반복하던

지난여름 집을 비웠다

 

홀로 외로운 노년

다시 가족을 꿈꾸지만

마늘밭 옆집 카페 뒷집도

비울 준비를 한다

가끔 비워야 하는 집을 만든 자식들은

눈물 흘리고 죄책감에 빠지지만

홍시가 끼니였고

가족이 돌아오는 노모의 꿈을 

생각하기는 싫었다

 


 

 

▲ 이숙희 시인  © 울산광역매일

<시작노트>

 

 노인의 고령화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면서 나이 듦 그 편견을 넘어서는 태도와 죽음과 죽어감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절실히 필요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오늘은 어제보다/  죽음이 한 치 더 가까워도// 평화로이/ 별을 보며/ 웃어주는 마음"을 표현한 이해인 수녀도 낭만적인 시의 표현과는 달리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직면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고 고백한다. 

 

 

이숙희

 

시인, 바구니도예작가

 

1962년 경주에서 출생하여 울산에서 성장하였다. 1986년 <한국여성시> 등에 시 발표로 등단 했으며, <한국작가회의>, <울산작가회의> 회원이다. 저서로는 시집 『옥수수밭 옆집』 『바라보다』 『마가렛』 『비워진 집』 『검은 트랙 위 청개구리』(2024, 시산맥사) 등이 있다. 2015년에 “울산작가상”을 수상하였고, 2018년 <울산문화재단> 문예진흥기금을 받았다. 공예작품으로 2018년 <울산광역시공예품대전> 장려상,  2019년 <부산미술대전>, 2020년 <대구 미술/공예/서예/문인화/민화대전> 입선 등 다수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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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11/07 [17:45]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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