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어귀 간판 없이
키 작은 빨간 우체통이 서 있고
담배 공중전화 버스시간표 벽에 붙은 콧구멍만 한 가게
몽당연필 귀에 꽂고
느릿느릿 주판알 튕기다
외지나간 손녀 맞듯
아무나 반겨주는 쌀게 숨구멍만 한 가게
농약 호미 연탄 검정 고무신 눈깔사탕 산도 사이다
빨래비누 미원 건전지 치약 고무줄 양초 팔각성냥
쫀디기 꾀돌이 짱이야 빙초산 소주 도가막걸리 담배
나이롱화투 먼지 뿌옇게 앉은 꽁치 통조림 귀퉁이 달아 난 외상장부
구석구석 제자리 찾아 떡하니 앉은 구멍가게
탁배기 대포 한잔 놓고
공짜배기 굵은소금 안주 삼아 입에 털고 말씀 귀담아본다
‘...아그들이 몰려오면 눈이 아주바뻐
백 원 내고 오백 원어치 가져가면 다 알고 있지라, 그래도 말 안 해
문구녕 뚫어 유리 붙인거 그거 그라믄 손짓거리 덜하지
아그들 좋은 길 가라고...
애기들 한테도 너 왔냐 안 해
그러면 아그들이 배울게 없잖에
자네 왔는가, 조심해 가소 했지’
‘간 빼서 못에 걸어놓고 장사혀
늙어 농게 옛날 머리하곤 틀려,
주판 잘못 튕겨 백 원 더 받으면 갖다 줘야 마음이 편해’
‘살아온 일 생각하면 참말로 아닐 아닐 해
장사 중에 제일 말단이지
내가 젤 좋아하는 노래가 이미자 여자의 일생이네
그게 나하고 똑같드랑께’
‘긍게 힘이 딸려 이제는 못 허것네
완전히 진돗개가 돼 부렀제
다시태어나믄 절대로 안 해
진짜로 안 해 싫어‘
연신 먼지떨이를 흔들다 말고
뭐가 부끄러운지 웃어주는
외할머니 같은 추억의 구멍가게
<시작노트>
대형마트, 24시 운영 편의점이 즐비한 요즈음에도 살아남은 점방이 있다. 좁아터진 점방 한 귀퉁이에서 주인 할아버지가 졸고 있는 모습은 퍽 정다워 보인다. 「구멍가게 이야기」 박혜진. 심우장 2021 ㈜ 도서출판 책과 함께. 책 속 내용 가져와 빼고 보태고 비틀었다.
박시학
본명: 박성학
이메일: psh7647@naver.com
시집 『시시각각』
동시집 『노란하늘』
『동시동시』
‘시산맥시회’ 특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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