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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기획-독일> 막을 내린 에센의 산행하는 사람들
 
이금숙 시인 수필가 시 산맥 회원   기사입력  2025/01/21 [16:58]

▲ 이금숙 시인 수필가 시산맥 특별회원     ©울산광역매일

에센 한인 교민들이 발데나이제에서 만나 그 근방의 야산을 산행하기 시작한 지가 벌써 20여 년이 지났다. 사실 그 산행은 우리 교민들이 걷고 싶으면 누구나 그곳으로 모여 자유롭게 함께하는 한 동아리였다. 초창기에는 부인들도 몇 명 모여 나도 그 산행을 함께 했지만, 하다 보니 힘에 부쳐서 부인들은 중도에 모두 그만두었다.

 

이국 생활 기나긴 노정 속에 우리 에센 교민 남성들이 추구한 체력 증진 활동 모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들이 한창 젊은 시절엔 축구팀을 구성하고 야외 축구장을 빌려 매주 토요일 오전에 축구를 열심히 찼다. 그러나 몇 해가 지나며 맞벌이 부부로 어린 자녀들을 양육하며 시간적 여유가 없다 보니 하나둘 빠지기 시작하여 나중엔 해체되었다. 그 후 수년 동안 별다른 모임이 없이 지내다가 자녀들의 학령기가 지난 중년을 넘어선 교민 대여섯 분이 산행하기 시작해서 나중엔 20여 명의 인원이 모였다. 평일엔 직장 생활에 쫓기다 주말을 맞아 매주 토요일 오전 9시면 시원하게 펼쳐진 발데나이제 수상경기 관람석으로 모였다. 이들은 무슨 조직이나 아무런 규정도 없이 누구나 시간이 허락하고 또 걷기를 즐기면 그곳으로 나와 건강을 위해 3시간 정도를 함께 걷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친분이 더욱 두터워지고 동족 애로 결속되었다.    

 

아침 햇살이 강물 위에 부서져 금물결로 일렁이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강둑을 따라 걷다가 한길로 올라가면 어느 지점에 다다라서 야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그들은 그곳으로 들어서 화기애애한 대화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사시사철 달라지는 자연의 변화를 즐기며 좁은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걸었다. 상당히 가파른 좁은 산길을 따라 걷다 보면 평평한 쉼터가 있다. 그곳에서 그들은 가슴을 활짝 펴고 저 멀리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발데나이제를 내려다보며 자연이 주는 보약을 만끽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각자 가져온 음료를 마시고 약간의 다과를 나누어 먹기도 했다. 겨울에는 하얗게 눈이 쌓인 산길을 조심조심 걸으며 신비로운 설경에 감탄을 보냈다. 

 

산에서 내려와 산기슭 아래에 있는 “탱고 암 발데나이제”라는 독특한 간판을 붙인 구멍가게에 옹기종기 모여 서서 진한 커피 한 잔을 즐겼다. 다시 수상경기 관람석으로 오면 그날 3시간의 산행 코스가 끝나고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그때만 해도 그들은 젊었고 산행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느 때부터 산행하는 일이 힘들어 인원이 점점 줄었다. 몇 명 모인 중에서도 어떤 이는 다리에 힘이 없어, 어떤 이는 숨이 가빠 산으로는 못 올라가고 해서 그때부터는 강가로만 산책했다. 이제 그들은 산행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산책하는 사람들이었다.    

 

모인 인원이 적다 보니 친분은 더욱 끈끈하고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생일을 맞이하신 분, 또는 가정에 경사가 생기면 산책이 끝나고 한턱을 내서 가끔 식당에 모여 점심을 함께했다. 그중의 한 장로님은 점심을 함께하고 다음 주 토요일엔 자기가 점심을 낸다고 식당에 자리 예약을 했는데 3일 후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 장로님은 평소에 아픈 곳이 전혀 없고 건강하셨는데 갑자기 그렇게 가시고 나니 산행 친구들은 하나같이 모두 큰 충격을 받고 인생이 너무나 허무하다는 허탈감에 빠졌다. 

 

그리고 얼마 후에 산행 친구 또 두 분이 저세상으로 가셨는데 그중 한 분은 나의 남편과는 오래전부터 특별히 절친한 친구로 서로 신뢰하고 귀하게 여기며 지내던 분이라서 남편의 슬픔은 유별났다. 

 

이렇게 이곳 한인교포 1세들은 청청한 기백의 청년들로 독일에 와서 이곳에서 가정을 이루고 맞벌이 부부로 자녀들을 양육하며 근면과 성실로 열심히 일하며 생활 기반을 다져 노후대책을 마련했다. 특히 자녀들 교육에 열정을 쏟아 자녀들이 특종 직과 요직으로 종사하며 가정을 이루어 손자 손녀를 보는 행복을 누리지만, 그러나 흐르는 세월 속에 쇠약해지는 육신과 건강만큼은 하릴없어 숙명으로 받아드릴 수밖에 없나 보다.

 

산행을 함께하던 분들이 거의 다 건강 문제로 나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처음 산행을 시작한 친구 한 분과 남편이 둘이서 매주 토요일 그 시간에 오래도록 함께 발데나이제 강가를 산책했다. 그러다 그 친구가 딸이 사는 베를린으로 이주하고 나서 에센의 산행하는 사람들은 이제 젊은 날의 아름다웠던 추억의 한 토막으로 자리매김하고 완전히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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