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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흐르는 아침> 늙은 목수
 
심은섭 시인   기사입력  2024/04/24 [16:33]

 목수는 태아의 집을 짓기 시작했다 사내아이 사주 속에서 푸르게 자라던 한 그루 무궁화나무, 꽃 활짝 피워내고, 천수를 누리라고 이름을 장수라고 지었다 찬 공기로 허기를 채우지 말라며, 주춧돌에 큰 ‘財’자를 새겼다

 

 때로는 납덩어리 얼굴로 달려드는 태풍을 잘 견디어 내라고 네 기둥을 성스러운 성황당 상수리나무로 세웠다 목수가 펼쳐 든 설계도면 한 켠에서 눈꼬리 치켜세운 사금파리가 발견되어 황급히 물개가죽으로 지붕을 씌웠다

 

 먼 훗날, 가슴으로 후벼들 하얀 고독, 그리고 단단한 적막을 쫓아내줄 풀피리 하나 싸리문 밖에 걸어 두었다 천둥소리에 실밥이 터져버린 정신을 일깨워줄 우물도 마당에 파 두었고, 사주를 지켜내라고 긴 솟대도 세웠다

 

 고삐 풀린 시간으로 태아의 어린 뼈는 다 자라서 의문의 부호들이 산란하는 도시로 떠나갔다 저녁이 되어 심란한 마음을 다스려 보려고 고독을 대패질 해보지만 그 고독의 대팻밥은 목수의 가슴속으로 자꾸 말려들었다

 


 

 

▲ 심은섭 시인  © 울산광역매일

<시작노트>

 

 시간은 흐른다. 위에서 밑으로 흐르는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르는지, 빙글빙글 돌면 흐르는지에 대해 어떤 철학자도 과학자도 지금까지 규명하지 못했다. 다만 우리들은 역사주의자들이 말하는 `시간은 수평으로 흐른다.`는 가설을 믿고 따른다. 시간이 어느 방향으로 흐르든, 아니면 어떤 형태로 흘러도 우리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다만 흐른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이처럼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역사나 한 인간의 삶에 시작과 과정과 끝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부연하면 시간의 흐름은 사물을 탄생시키고, 성장하게 하고, 소멸시키는 절대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자식을 품에 안고 사랑하며 산다고 하여도 성장을 하고나면 언젠가 둥지를 떠나야 하는 법, 이것을 우리는 이별이라고 하고, 이 이별은 영원성을 가지고 있다. 다 자란 자식이 둥지를 떠난 뒤에 아무 때나 떠나갔던 둥지로 다시 되돌아온다면 이것을 이별이라고 말할 수 없다. 천륜의 인연이라고 하지만 그 천륜의 전제조건은 이별이라는 성질의 것이 반드시 독소처럼 들어있다. 그러므로 `나`와 `타자`는 늘 이별의 전제로 만난다. 일생은 영원하지 않으므로 타자를 중상과 모략으로 배척하지 말아야 한다. 그 까닭은 모든 결과는 허무와 귀결되기 때문이다.

 

 

심은섭

 

강릉 출생

2004년 『심상』으로 시인 등단

200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2008년 『시와세계』로 평론 당선

시집으로 『Y셔츠 두 번째 단추를 끼울 때』외 다수

평론집으로 『한국현대시의 표정과 불온성』 외 다수

수상으로 〈제22회 박인환문학상〉외 다수

 

shim8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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