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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감자
 
하연우 시인   기사입력  2016/01/05 [15:54]
 
알감자 몇 알을 뽀득뽀득 씻어서
껍질째 스텐 냄비에 앉히고
물은 감자가 잠길 정도로 찰랑찰랑하게
가스는 중간불로 맞추어 놓았더니
몇 분이 지나자 감자는
싹을 틔울 때처럼 열이 오르는지
냄비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연거푸 안간힘을 쓰는 것이
겨울 한낮을 다 녹일 듯 지랄이다
감자는 며칠 전 진눈깨비 소소히 내릴 때
외삼촌의 고물 트럭에 실려 와서는 우리 집 앞마당에
한 박스 부려졌다
막 하우스에서 오시는 길인지 흙발인 삼촌은
꽁꽁 얼어붙었을 몸도 녹일 틈 없이
그냥 휙 돌아섰다
트럭이 사라질 때쯤 나는 박스를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캐다가 호미에 찍힌 것들과
땅 속에 있는 동안 굼벵이에게 살을 반쯤 내어준 것들과
토실토실, 상처 하나 없는 것들이
한데 섞여서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 게 아닌가
그러던 감자는 이내 고방으로 옮겨졌고
밥상에 앉아 뜨거운 감자 껍질을 벗긴다
요리조리 돌려가며 벗긴 감자를 소금에 찍어
한 입 베어 물면 아, 팍신팍신하고 암팡진 맛은 아니어도
탁.탁 터진 껍질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외숙모 잔주름이 스쳐 지나가는 기라
내 알기에 숙모는 가을에 감자를 심은 적 없는데
옆동 하우스에서 품삯 받아 또 가지고 오신 게지
단 한 번도 감자를 캐보지 않은 나는
불붙은 감자를 옴삭옴삭 잘도 먹어 치우고는
작업 끝낸 일꾼처럼 일어선다
그리고 아주 잠깐 생각하는 기라
감자는 생애 두 번 꽃을 피울지도 모른다고!
그때부터 오후 내 들썩이던 칼바람 잦아들어
뽀얀 꽃잎이 한 잎 두 잎 날리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노트:
▲ 하연우 시인
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외삼촌은 누나(울엄마)를 그렇게 챙길 수가 없다.
울엄마가 전화만 하시면, 열 일 제쳐두고 달려오신다.
외삼촌은 살림이 그리 녹녹하지 못하시다.
그런데도, 먹을 것, 농산물이 생기면, 우리 집부터 가져오신다.
그런 외삼촌 내외를 볼 때면 가끔 가슴이 짠하게 젖어 온다.
그 따뜻한 마음으로 우리는 그 겨울 감자를 아주 맛있게 먹었고,
엄마와 나는 외삼촌께 많은 것을 의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연우 hso10210@daum.net
한맥문학 신인작품상 수상. 현대시문학 추천 완료. 창녕문인협회. 경남시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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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1/05 [15:54]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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