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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세베리아
 
송은숙 시인   기사입력  2016/01/06 [15:22]
 
산세베리아는 원기왕성하다
집들이 화분이 몇 해 만에
푸른곰팡이처럼 베란다에 퍼졌다
아이들은 산세베리아와 즐겁게 논다
이내 꽃대를 밀어올리고
아이들은 자란다
산세베리아는 하얀 꽃 둘레에
왕관처럼 꿀샘을 두르고
아이들은 풋사과처럼 아름다워지고
산세베리아꽃은 나비처럼 행운을 부르고
아이들은 어느 날 아침 가방을 꾸려 집을 떠났다
분갈이 흙은 촉촉하고
어떤 산세베리아는 여전히 뿌리를 내리는 중이다

엊그제는 한 아이가 돌아와
어느 곳으로 뻗어갈지 물었다
발바닥에 돋아난 실뿌리를 보여주며
낯선 곳으로 가고 싶어 했다
조상들의 고향으로
뜨거운 곳으로
산세베리아를 본다
푸른 잎 끝은 어디를 가리키는지
올해도 온몸으로 꽃대를 밀어 올리는지
오후 한나절 화투 패 들여다보듯
골똘히 들여다본다
주술사의 푸르고 강한 신탁을 기다린다

▲ 송은숙 시인
<시작노트>
  우리 집에는 베란다와 거실에 여섯 개의 산세베리아 화분이 있다. 원래 두 배 정도 더 많았는데 지난봄에 분갈이를 하면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 모든 산세베리아가 집들이 선물로 받은 화분 하나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식물을 키우는 데는 젬병이어서 대부분의 식물이 한두 계절을 넘기지 못하고 시드는 편이라 산세베리아를 받았을 때도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산세베리아는 푸르게 잘 자랐고, 가지를 많이 뻗어 자주 포기 나누기를 해줘야했다.

  산세베리아는 자리 잡은 지 다섯 해 만에 첫 꽃을 피웠다. 연둣빛 꽃대가 올라오더니 석산을 닮은 하얀 꽃이 송이송이 피기 시작했다. 꽃 둘레에는 이슬방울 같은 꿀샘이 맺혔다. 꽃은 향기로웠고, 꿀샘은 달콤했다. 산세베리아 꽃이 피면 집안에 좋은 일이 생긴다더니, 그 해 딸아이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을 했다. 그 후 산세베리아는 이따금 꽃을 피웠고,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꽃이 필 때마다 집안에 기쁜 일이 생겼다. 첫 시집을 낼 때도, 딸아이가 취업을 할 때도 산세베리아 꽃이 피었다. 산세베리아는 그리스의 운명을 예견하던 델포이의 무녀와 같은 역할을 해온 셈이다.

  지난 여름방학 땐 큰아이가 와서 진로를 변경할 뜻을 내비쳤다. 준비하던 시험을 접고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어 했다. 갈수록 취업 환경이 나빠지고 있어서 말리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아들의 바람이 하도 간절해서 승낙을 했다. 하지만 불안감은 어쩔 수 없었다. 물을 줄 때마다 산세베리아 화분을 살폈다. 잎이 더 자라고 포기가 더 늘었을 뿐 꽃 소식은 없었다. 다행히 아들은 대학원 시험에 합격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신탁을 받았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십이월에 산세베리아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산세베리아, 남아프리카 원산의 백합과 식물. 꽃말은 관용.

<약력>
2004년 『시사사』로 등단
시집 『돌 속의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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