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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선물
 
김명숙 시인   기사입력  2016/09/08 [15:00]
▲ 김명숙 시인    


참으로 더웠던 여름이었습니다. 매미 소리 한창이던 8월 중순, 커다란 박스가 택배로 왔습니다. 책이 가득 들어 있는. 그런데 그 안에는 이런 사연의 글이 들어 있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좋은생각」의 오랜 독자인 박순련입니다.
「좋은생각」 5월 호에 실린 한글 배우는 어르신들의 사연을 읽고 가슴 뭉클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독일에서 살았습니다. 낯선 땅, 말과 글도 모르는 곳에서의 생활은 뿌연 안개로 뒤덮인 길을 운전하는 것처럼 막막하고 불안했습니다. 하루하루가 긴장과 두려움의 연속이었지요. 온갖 세파를 헤쳐 나가느라 글을 배우지 못했던 어르신들의 마음이 독일에서 살아갈 때의 제 심정과 꼭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르신들이 「좋은생각」을 읽으며 글을 깨우친 기쁨을 마음껏 누리고, 참고 사신 그 세월이 고맙다고 이제 자신을 쓰다듬고 위로를 얻으시면 좋겠습니다.
제 마음과 함께, 더욱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글씨를 키운 「큰글씨 좋은생각」을 6개월간 전해 드립니다. 기쁘게 받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박순련 드림-


또 이런 글도 덧붙여져 있었습니다.
어르신들이 글을 깨우친 기쁨을 마음껏 누리도록, 자기 이름이 적힌 책을 받아 보는 기쁨을 드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선생님들이 책을 나눠줄 때 여러 학습자 앞에서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불러 책을 직접 전해 주십사는 부탁을 해왔습니다. 고맙게도 출판사에서 모두 개별 포장을 해서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스티커에 인쇄해서 보내왔습니다.


이런 사연을 담은 책이 학생 수 만큼 수북이 왔습니다.
수업시간,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부르면서 책을 나눠주었습니다. 어리둥절한 표정과 쑥스러운 낯빛으로 자기 이름이 인쇄된 책을 받아들더니 몇 번씩이나 쳐다보고 만져보고... 감동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듯합니다.


보내주신 분의 사연을 함께 읽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잘 살아온 스스로를 위해 박수를 쳤습니다. 글을 몰라 힘들었던 시간들이, 글을 알게 되어 느꼈던 기쁨들이 얼굴 얼굴에 어렸습니다.
책을 보내주신 박순련 님의 실명을 이렇게 거론해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그 낯선 독일로 갔는지는 모릅니다. 실업난 해소와 외화획득을 위해 파견된 1만 여명의 간호사 중 한 명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로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글도 말도 모르는 먼 나라였으니 얼마나 막막하고 불안했을까요?


글을 모르는 어르신들 역시 박순련 님처럼 안개 속을 헤매듯 무섭고 외로웠을 것입니다. 숫자를 읽을 수 없어 버스 타기조차 겁났다는, 계모임하는 식당 이름을 찾을 수 없어 다른 사람과 항상 같이 다녔다는, 식당을 하면서 계산을 못해 일하는 사람에게 카운터를 맡겼다는 어르신들... . 그렇게 글을 모르고 살다가 쉰에, 예순에, 일흔에 공부하겠다고 매일 학교에 오십니다. 학교에서 한글도 배우고, 영어도 배우고, 수학도 배우고, 한자도 배웁니다.


저는 그 어르신들과 함께 11년째 한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배운 것을 내일이면 대부분 까맣게 잊어버리지만 검정고시로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대학에 다니는 학생도 있고, 7년째 다니는 장(長)학생도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까지 올 수 있고, 손가락에 힘이 있어 글을 쓸 수만 있다면 계속 다닐 것이라고 장담들을 합니다.


「좋은생각」에서 매일 한 꼭지의 글을 읽고 난 뒤 수업을 시작합니다. 별다른 어려움 없이 읽고 이해하며 그 내용에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만한 기쁨인지 우리는 감히 짐작조차 못 할 것입니다. 매일 감격하고 매번 흐뭇해합니다. 글을 안다는 것이 세상을 다 얻은 느낌일 것입니다.
느리게, 가끔은 휘청이면서도 진행되는 그들만의 빛나는 서사. 그 줄거리 어디쯤 나무 그늘 풍성한 의자 하나 놓였습니다. 마음에 등불 환히 밝혀준 덕분에 우리 잠시 쉬어갑니다. 이 글이 님에게 전달이 되진 않겠지만 우리들을 향해 내밀어준 손길에 감사드립니다. 박순련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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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9/08 [15:00]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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