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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흐르는 아침> 나무의자
기사입력  2021/05/13 [17:16]   김욱진 시인

물속에 가라앉은 나무의자 하나

미라처럼

등을 바닥에 대고

못 한 모퉁이 조용히 누워있다

지나가다 언뜻 보면

평생 누군가의 엉덩이 치받들고

꼿꼿이 앉아 등받이 노릇만 하고 살다

이제 두 다리 쭉 뻗고 누워

노후를 편히 쉬는 듯한 모양새다

그 자세가 부러웠던지

물오리 떼 간간이 찾아와

근심 풀듯 물갈퀴 풀어놓고 앉아

쉬, 하다 가고

그 소문 들은 물고기들도

어항 드나들듯

시시때때로 와서 쉬었다 가는데, 저 나

무의 자는 더 이상

나무도 아니고, 의자도 아니다

앉으나 누워나, 성당

못 오가는 사람들 쉼터 되어주다

못 속으로 돌아가

못 다 둘러빠지는 그 순간까지

십자가 걸머지고 가는 나

무의 자는

나무로 왔다 의자로 살다

못으로 돌아간 성자

 


 

 

▲ 김욱진 시인     © 울산광역매일

<시작노트>

 

지난겨울 성당 못 둑을 돌다 못 한 모퉁이 빠진 나무의자 하나를 우연찮게 보았습니다. 그 나무의자가 살아온 지난 날 궤적이 교직 퇴임을 두어 달 앞둔 나의 모습으로 얼비쳤어요. 어느새 그 소문 듣고 찾아온 청둥오리와 물고기들도 나무의자에 한참 걸터앉아 쉬다 가더군요. 뼈마디 다 사그라지고 헐거워진 그 나무는 조용히 ‘나는 의자다’, 라고 그랬어요. 그러나 나무의자는 나무도 의자도 아니었어요.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도 누군가의 의자다’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나는 또 다른 나를 위로했습니다.

 

 

김욱진

 

2003년 시문학 등단

시집 『비슬산 사계』 『행복 채널』 『참, 조용한 혁명』 『수상한 시국』 

2018년 제 49회 한민족통일문예제전 우수상 수상

2020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2020년 전 세계 시인들의 코로나19 공동 시집『地球にステイ(지구에 머물다)』에  “노모 일기·7”이 선정 수록(일본 쿠온출판사에서 한영일중 4개 언어로 출간됨) 

한국문인협회 달성지부 회장 역임

32년간 중등교사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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