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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칼럼> 고뇌하는 공예
기사입력  2022/05/26 [17:51]   김재범 논설위원 도예가
▲ 김재범 논설위원 도예가     © 울산광역매일

 공예가로서 "사람들은 삼시 세끼를 해결할 때 사용하는 자기 그릇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알고 있거나, 궁금해 하는 경우가 있을까?" 스스로 자문해 볼 때가 있다. 예술가로 산다는 것 생각하기에 따라선 낭만적인 삶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그러한 낭만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겐 늘 자신에게 던지는 수 없는 질문들에 싸여 있다. 그래서 하루가 다르게 수많은 과제를 무릎에 얹고 어깨에 걸머쥐고 살아간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고 성공한 공예가가 있다면 연구 대상으로 삼아 반드시 본받아 비기를 배워야 할 것이다.

 

 천재적 환경을 타고나지 않는 한 근원적으론 단계나 절차적 질서를 충실히 따라가기 마련이다. 그 질문들은 단순하지만 처절하다시피 깊어야 한다. "누구를 위해 만들 것인가. 어느 때 어디서 만들어 낼 것인가. 형태와 색상, 어떤 느낌으로 만들 것인가. 어떤 재료로 만들 것인가. 어떠한 장식을 할 것인가. 지금의 구상은 고유한가. 누군가의 그것과 닮았다면 어떻게 차별한 고유를 담아낼 것인가?" 자기 진단을 거친다. 마지막 단계에서 뭐니해도 얼마의 가격을 붙여 어떤 시장에다 노출 시킬 것인지 한참을 더 고뇌하게 된다.

 

 우리 시대는 예술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장르와 장르를 넘나드는 크로스오버가 자유롭게 가능해지고, 기계화 문명이 창작환경 변화를 가속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공예의 개념이 재해석되고 확장되어 능히 예술의 영역을 넘보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를 지켜보는 한편에선 공예가 지나치게 예술적이거나 문화적인 콘텐츠에 집착하는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이것들은 공예를 고급화 예술화하면서 사회정치적 구호에 도구화되는 시도들이 되려 공예를 낯설고 어렵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나의 공예가 공예다움을 넘어 예술화를 추종해왔던 결과는 어떠한가. 우리 공예가 자기 정체성에 갇혀있다고 진단한들 무리는 아니다.

 

 우리의 생활공간과 고급화된 식탁들은 세계적인 메이저 브랜드 공예품들에 점유 당하고 말았다. 대중문화에서 `케이팝(K-pop)` 시대 현상을 만들었던 것처럼, 공예문화도 `케이크래프트(K-Craft)`를 만들 순 없을까? 여기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가 지금까지 사랑받을 수밖에 없었던 당시 공예의 시대적 위상과 여건을 탐구할 때 가능하지 않을까. 무한경쟁 시장에서의 경쟁력도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자랑할 만한 공예 위상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고유한 브랜드가 만들어질 때까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컨대 오늘날 유럽의 세계적인 도자기 브랜드는 18세기 유럽 왕실이 직접 발 벗고 뛰어들었기에 가능했던 사례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당장은 공예도 지구환경을 살리기 위해 일회용품을 줄여야 한다는 큰 의제를 맞닥뜨리고 있다. 예컨대 반영구적인 공예산업의 진가가 발휘되어야 할 때 붐(Boom)을 일으켜야 한다. 사회적으로 처우도 제고되어야 한다. 대중음악을 틀 때마다 저작권료를 지불 하듯이, 공예가들이 전시 등 작품발표를 할때에 응당 저작권료를 제도적으로 지불하는 사회 환경이 되어야 한다. 그 이유도 타당한 측면이 크다. 문화 예술감상 활동은 정서적 교감과 인문적 사고를 증진하여 창의적인 국가발전을 견인케 한다. 이뿐만 아니라 궁극엔 국민건강을 보양하는 밑거름이 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평생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뇌에 파묻혀 살아가는 사람들로 인해, 행복한 삶을 사는 이들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 고뇌는 사전적으로 "괴로워하고 번뇌한다" 또는 "정신적으로 아프고 괴로운 상황"을 말한다. 공예가들이 여러모로 선한 영향력을 세상에 미치는 역할을 다하며 괴로워하는 것까지 어찌할 순 없다. 다만, 번뇌하는 수고로움은 사회적으로 위로받을 자격이 있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번뇌를 108가지로 세분하고 있다. 그러나 108이란 숫자는 원래 많다는 의미로 쓰였다. 다시 말해 그 근원은 하나로 본래 자기인 일심(一心)을 잃지 않도록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계절의 여왕을 보내며 일심으로 공예적인 삶이 우뚝하길 고대해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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