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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 에세이> 사랑과 행복이 피어나는 곳
기사입력  2022/05/26 [18:21]   김용숙 수필가
▲ 김용숙 수필가     © 울산광역매일

 남편은 백일을 넘어서자마자 어머니를 여의었다고 했다. 연로하신 할머니 품에 매달려 이집 저집 다니면서 동냥젖을 먹으며 유아기를 보냈다고 한다. 운 좋은 날은 동냥젖을 먹고 허기를 면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 멀건 암죽으로 배를 채웠다니 안쓰럽기 그지없다. 먹을 것이 풍성하지 못했던 시절이어서 내 자식 먹일 모유도 모자라는 형편이라 남의 자식에게까지 젖을 물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기는 배가 등걸에 붙은 몸으로 종일 울어댔다. 시간이 지나자 아기의 몸에 열꽃이 가득 번졌다. 뜬 눈으로 간호하던 할머니는 새벽 동이 트기가 무섭게 손자를 업고 읍내 의원을 찾아갔지만 이미 다리는 땅을 딛지 못하고 힘없이 구부러져 있었다. 영양부족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마을에 돌던 홍역을 이겨낼 재간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그 후유증으로 소아마비 환자가 되었다고 했다.

 

 재혼한 아버지는 먼 곳으로 전근 가셨고, 할머니마저 돌아가시자 남편은 초등학교 육학년 때부터 자취생활을 했단다. 말이 자취 생활이지 친구들보다 한 뼘이나 작은 체구로 목발에 의지해 연탄불을 제때 갈지 못해서 냉방에서 지내는 날이 부지기수였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가 그리워 바람에 덜컹거리는 대문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속울음을 울었다고 한다. 계절이 바뀌어도 아버지는 오지 않으셨고 스스로 삶을 개척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고 한다. 동시에 가슴속에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곁 자라났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금은세공 기술을 배웠다. 기술을 연마한 다음 금은방에서 그간에 배운 것을 토대로 일을 했다. 거기서 번 돈으로 비로소 자기 가게를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손님이 원하는 디자인을 직접 만들어 주면서 열심히 일했더니 갈수록 단골손님도 늘었다. 

 

 유난히 더위가 맹위를 떨치던 어느 날, 더위를 참을 수 없어 손바닥만큼 창문을 열어두고 잠을 잤는데 드르륵 창문 열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시커먼 물체가 창문을 넘어 들어왔다. 도둑은 남편을 결박하고 이불로 뒤집어씌운 뒤 이내 가게로 들어갔다. 그의 몸으론 그 어떤 대항도 불가능했다.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상실감에 젖어있을 무렵 이웃 언니의 소개로 그를 만나게 되었다. 장애라는 공통점이 있었기에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 쉽게 마음을 주고받았다. 그는 나의 다리가 되어주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남편의 주선으로 양가 부모님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런데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시아버지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결혼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불편한 몸은 내 자식 하나로 족하다며 며느리까지 그런 사람을 맞아들이는 것은 가혹한 일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반대 이유를 조용히 듣고 있던 남편은 "아버지가 계셨어도 없는 듯 혼자 잘 살아왔습니다. 저의 선택인 만큼 책임지고 잘 살겠습니다"고 했다. 그의 말에 결국 함께 살아도 좋다는 승낙이 떨어졌다. 그날 이후 남편은 억척스럽게 일했다. 손바닥만 한 보석 가게를 구석구석 청결히 쓸고 닦으면서 손님을 맞이했다. 생활비를 줄여 가면서 없는 물건을 하나하나 늘렸다. 몇 년이 지나자 대여섯 개밖에 없던 손목시계가 제법 많아졌고 보석도 구색이 갖춰졌다. 남편은 거기서 안주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일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용 모양의 은반지를 끼면 재액을 막아주고 복이 온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아 너도나도 반지를 주문하려고 가게에 줄을 섰다. 남편은 연신 용 문양 반지를 만들어 팔기에 바빴다. 손님이 직접 보는 데서 세공해 이익금을 덜 남기고 판다는 입소문이 널리 퍼졌다. 

 

 그런데 남편이 어느 날 뜬금없이 "이제 장사도 터를 잡았으니 조금이라도 이른 나이에 아기를 낳아서 기르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정신이 아득했다. 신체장애 1급과 2급인 우리가 아이를 낳아서 어떻게 기를 수 있단 말인가. 그때 상견례 때 남편의 믿음직했던 모습이 불현 듯 떠오르면서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리에게 바라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틀로 찍어 놓은 듯 아빠를 닮은 아들을 남편은 무척이나 좋아했다. 목욕시킬 시간이 되면 가게 문을 잠시 닫고 함께 씻겨 주었다. 예방접종 일도 기억해 두었다가 멜빵 포대기로 아기를 안고 병원에 갔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기에 모질고 거센 바람을 맞으면서 살아오느라 매우 힘들었을 남편을 생각하면 가슴 한 구석이 저민다. 그러나 모진 풍파를 겪으면서도 꿋꿋하게 자신을 지켜냈고 두 아들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이끌어온 남편의 의지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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