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일태 전 한국해양대 겸임교수  © 울산광역매일

 나는 지금 행복한가라고 나에게 물어본다. 뜬금없은 질문이지만 아주 심각하고 간절하다. 그런데 행복이란 과연 어떤 것을 두고 말하는지도 의문이 든다. 인간은 누구나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행복추구라고, 학창시절 국민윤리 시간에 배웠다. 우리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고 행복 추구권을 두고 있다.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정작 행복이 무엇인지도, 내가 지금 행복한지, 불행한지도 모르면서 권리가 있다고 자랑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부터 찾아보고, 내가 그 행복을 누리고 있는지 살펴보아야겠다.

 행복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답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행복이라는 개념이 이해하기 어려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행복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정작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답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대답을 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잘 사는 것이라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하면서도, 잘 사는 것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들이 있다"고 했다. 어떤 이는 부자로 사는 것, 즐겁게 사는 것, 건강하게 사는 것, 명예롭게 사는 것, 지혜로운 삶을 행복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같은 사람이 가난할 때는 부유함을 행복이라고 하다가 병 들면 건강이 행복이라고 말한다. 

 동양에서는 많은 복을 받은 삶이 행복이라고 믿었다. 그중에서 유교에서는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 다섯 가지 복을 오복이라 하고, 행복한 삶에는 반드시 오복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늘날에도 행복에 대한 이론들은 다양하다. 행복이란 곧 즐거움(쾌락)이라고 여기는 쾌락주의, 행복은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그것을 욕구 만족 이론이다. 이 두 가지는 행복에 관한 주관주의적 견해다. 쾌락주의는 즐겁다는 주관적 느낌을, 욕구 만족 이론은 자신의 욕구가 실현되었다는 주관적 판단을 행복의 결정적 요소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조건 즐겁게 느끼기만 하면, 또는 어떤 욕구든지 만족 되면 그것이 행복이라고 하기는 곤란하다는 점이 주관주의의 문제다. 그래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말하려면 남들도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에서 쾌락주의와 객관적인 행복은 배제하고 오복은 욕구에 포함되기에 욕구 만족 이론 측면에서 파악하기로 한다. 행복이란 모든 욕구가 충족되는 상태이다. 그러나 욕구도 단계에 따라서 달라지고 하위의 욕구가 충족되어야 상위의 욕구가 생긴다고 한다. 매슬로는 욕구 5단계 설에서 생리적 욕구, 안정의 욕구, 소속감과 애정의 욕구,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가 단계적으로 발생하고 하위의 욕구 충족 후에 상위의 욕구가 생긴다. 하위 욕구의 경우는 객관적인 측정이 일정 부분 가능하지만, 상위의 욕구일수록 주관적이다. 허기(虛飢)나 갈증(渴症) 같은 생리적 욕구는 사람에 따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최상위의 욕구인 자아실현의 욕구는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크게 다르기에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행복의 개념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고, 행복하다는 느낌도 시간과 공간, 대상에 따라서 달라진다. 그래서 지금 나는 행복한가를 자문하고 있다. 젊은 시절에는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행복했다. 비록 허기나 갈증 같은 하위의 욕구를 충족하지 못해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었기에 행복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때 나의 욕구는 넓은 거실에서 안락한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것이었고 지금 그 욕구를 이루었는데. 

 그러나 지금은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희망이라는 산의 정점을 찍고 지금은 하산하는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행복이란 쾌락도 아니고 욕구의 충족도 아니고 객관적일 수도 없다. 내 나름으로 잘 사는 것이다. 온전히 나의 주관적인 생각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행복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행복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