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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기획-서북미 문인협회> 축복의 시간
 
김행숙 시인   기사입력  2024/03/24 [18:45]

▲ 김행숙 시인  © 울산광역매일

 해마다 새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새봄은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주는 축복의 시간이다. 긴 겨울이라는 과거의 문이 닫히고 한줄기 따뜻한 빛을 따라 뽀족하게 연한 잎을 내미는 푸른 빛의 봄은, 희망을 품은 미래라는 새 계절로 들어가는 입구 같다. 창밖으로 예쁜 노란 옷을 산들산들 흔드는 수선화와 그 어떤 향수보다 환상적인 향기를 뿜어 올리는 분홍 히아신스를 보자니 감사한 마음에 작년 겨울이 떠올랐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는 인사말에는 인간이 바라는 모든 행복의 조건이 함축된 축복의 말이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와 이별하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계획한 꿈들을 만나야 하는 시간이었던 지난해 겨울, 나는 남편과 함께 병실에서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했었다. 평생 처음 경험하는 정형외과 병실에서의 송구영신이었다. 교회에서 들뜬 기분으로 송구영신 예배를 드릴 때와는 너무나 다르게 통증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수술받은 환우들과 함께하는 경험은 감회가 특별하였다.

 

 늘 부지런하던 성정으로 과도하게 소모된 남편의 양쪽 무릎이 문제였다. 무릎관절 사이에 있는 연골이 모두 마모되어 인공관절수술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미국에서의 수술과 한국에서의 수술을 두고 가족들과 함께 이것 저것 따져보았다. 여러차례의 논의 끝에 결국 한국에서 수술을 받는 편이 삶의 질이나 품격을 보다 더 상승시킬 수 있으리라는 믿음과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제약과 여건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한국으로 날아가 수술을 받게 되었다. 좋은 결과는 거저 얻을 수 없지 않은가. 다른 일도 마찬가지이지만 가치 있는 것일수록 노력 없이 고통 없이 공짜로 얻을 수 없다. 

 

 가족과 함께 뜻깊은 추수감사절을 보내고 곧바로 출국하여 부산 해운대 백병원에 도착했다. 장거리 여행으로 인해 언제 수술이 가능한 지 여부를 검진한 후에야 일주일간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곧 12월 4일에 입원하여 왼쪽 무릎부터 수술했다. 그것도 잠시 두 주간 쉬고 오른쪽 무릎도 마저 수술을 받았다. 몸을 지탱하는 기둥인 두 다리의 관절을 새롭게 디자인한 셈이었다. 그리고나서 물리치료를 받으며 재활활동을 하게 되었다. 

 

 남편은 다행히 기저질환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수술 경과가 좋고 회복도 빨랐다. 그러나 무릎을 수술한 후의 통증이 얼마나 심한지 마약성 진통제와 항생제 없이는 견뎌낼  수 없어 했다. 특히 재활을 위해 물리치료실을 오갔는데, 무릎을 꺾는 과정에서 느끼는 고통은 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심해서 보는 나도 피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듣자하니 이 고통의 때를 견디지 못해 포기하는 사람이 태반이 넘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고통을 견뎌내지 못하고 포기한 사람들은, 평생 무릎을 굽히지 못하는 불편함과 싸우며 살아야하니 이로 인한 삶의 질이 떨어진 노후를 보내게 된다고 한다. 친구의 지인 중에도 이러한 고통과 매일 싸우며 살아가는 이가 있다. 수술을 한 효과를 경험하지 못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남편은 수술 전에 “나는 의지가 강해서 아픔을 잘 참을 수 있을 거야.” 라고 스스로 자부했었다. 나도 남편의 평소 의지력을 알기에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런데 재활치료를 받던 어느 날, 얼마나 아팠으면 “그 말을 거둬들여야겠다.”라고 까지 했었을까. 그리고는 왼쪽 무릎 꺾는 것을 오른쪽 무릎 수술할 때 꺾어 달라고 요청했다. 한 쪽 무릎이라도 아픈 고통을 느낄 수 없는 마취상태에서 해달라고 말이다.

 

 아무런 불편함 없이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는 내 무릎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새삼스레 그동안 얼마나 어떻게 사용하였나 자문해 본다. <무릎>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으니 귀하게, 아주 귀하게 보살펴 줘야겠다는 약속을 해본다. 건강하게 백 세까지 장수하려면 무엇보다도 두 무릎이 건강해야 걸을 수 있겠기에 말이다. 인생은 두 발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인 것 같다. 요양병실의 특실에서 왕년의 나를 회상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통증으로 고통당했던 남편의 귀중한 시간, 한국에 가 있느라 집을 비운 동안 도둑에게 빼앗긴 소중한 것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은 타임캡슐에 담아 묻어두기로 했다. 남편은 작년 봄부터 통증 없는 두 다리로 미래의 문을 열고 마음껏 걷는 은혜를 누리고 있다. 올해 새봄도 우리에게는 축복의 시간이다.

 

 나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에게 새해처럼 축복의 말을 전하고 싶다. <새봄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와싱턴 주 켄트에서

 


 

 

시인, 서북미문인협회 회원

제19회 뿌리문학 신인상 시부문 당선

와싱턴주 페더럴웨이시 한인회 이사장 역임

와싱턴주 상공회의소 회장 역임

현 와싱턴주 페드럴웨이시 한인회 회장

뿌리문학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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