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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칼럼> 원준이의 핫도그
 
성진숙 울주군 무거초 교사   기사입력  2024/03/25 [16:40]

▲ 성진숙 울주군 무거초 교사  © 울산광역매일

 초등학생 시절을 떠오르면 자동연상되듯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학교 앞 문구점에서 파는 핫도그입니다. 나무젓가락 절반쯤 되는 크기에 노릇하게 튀겨져 표면에 까슬까슬한 튀김옷이 묻어있습니다. 그 위에 눈처럼 내린 설탕과 새빨간 케찹이 지그재그 모양으로 뿌려진 큰 핫도그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돕니다. 물자가 그리 풍족하지 않았던 그 시절에는 더 그랬지요. 제 기억 속 커다란 핫도그에는 윗부분에 원준이가 한 입 베어문 흔적이 있습니다. 그 흔적은 초등학교를 막 입학했던 저의 어떤 기억과 맞닿아 있습니다. 

 

 시골에 있는 작은 초등학교의 입학생은 2학급이었습니다. 친구는 1반에, 저는 2반에 편성되었지요. 30분을 걸어 집으로 가야 하는 곳이었어요. 입학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던 어느 날, 집으로 가는 길에 친구 서영이가 “있잖아. 나 엄마한테 말해서 선생님께 짝 바꿔 달라고 했다. 짝이 너무 괴롭혀서 말이야.”하고 자랑인지 하소연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했습니다. 그 순간 서영이가 얼마나 부럽던지요! 집에 가자마자 가방도 내려놓지 않고 엄마에게 저도 졸랐습니다. 

 

 “엄마, 나도 선생님께 말해서 짝지 좀 바꿔주세요. 원준이가 맨날 괴롭혀서 학교 가기 싫어요. 옆 반 서영이도 바꿨대요. 제발 선생님께 전화 좀 해주세요.” 

 

 첫째 딸이 학교에 다녀와서 옆 반 아이를 비교하며 조르자, 엄마가 성화에 못 이겨 담임선생님께 전화하셨어요. 됐다 싶었죠. 다음 날 짝이 바뀔거라는 부푼 기대를 안고 학교에 갔습니다. 등교해 원준이를 보면서도 “흥” 콧방귀를 끼고 이제 곧 자리가 바뀔거니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날 온종일 기다려도 짝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대신 원준이의 행동이 조금 달라진 것 같았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머리며 등이며 어깨를 탁탁 치며 괴롭히지도 않았고, ‘쑥떡’이라고 이름으로 놀리지도 않았고, 그날 치마를 입고 갔는데도 아이스께끼(치마를 들어올리는 장난)를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짝이 바뀌지 않았다는 실망은 컸지만, 그날 하루는 원준이랑 지내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굣길에 문구점 앞을 지나는데 원준이 손에 핫도그 두 개가 들려있었습니다. 원준이는 저에게 불쑥 “이거 먹을래?” 하며 핫도그를 얼굴 앞에 내밀었습니다. “아니” 부끄러워 이 말을 던지고 집으로 왔는데 그때 고개를 돌리다 보았던 원준이의 한 입 베어문 핫도그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집에 가서 “원준이가 사실은 친하게 지내고 싶었대.”라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핫도그를 받을 걸 그랬다는 뒤늦은 후회를 했습니다. 그 이후 원준이와 다시 친하게 지냈는지는 기억에 없습니다. 그저 그 핫도그 속에 담긴 원준이의 마음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지요. 

 

 요즘 정서로는 머리를 툭툭 계속 치는 것도, 싫어하는 별명으로 놀리는 것도 학교 폭력에 해당합니다. 심지어 치마를 들어 올리는 행위는 성폭력에 해당합니다. 그 시절 저의 엄마도 제 말을 듣고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테죠. 갓 입학한 딸아이가 놀림을 받고 괴롭힘을 받으며 심지어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으니까요. 그러나 엄마 세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준이에게 이유가 있었다고 믿었습니다. 아이가 좋은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셨죠. 원준이를 비난하거나 짝을 바꿔 피하는 방법 대신 저의 불편함을 전하고 원준이가 상대방이 좋아할 만한 다른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믿어주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가끔 교실에서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할 줄 몰라 미성숙한 방법으로 친구를 대하는 아이를 만납니다. 그 아이를 보면 원준이의 핫도그가 떠오릅니다. 그 아이도 알려준다면 다른 방법으로 마음을 전할 수 있겠지요? 이번엔 원준이가 핫도그를 내밀면 “그래,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하고 함께 핫도그를 먹으며 하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언젠가 교실에서 만나는 또다른 원준이가 대신 해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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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3/25 [16:40]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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