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내 야성의 소리 듣지 못하리
나는, 아이의 살 냄새처럼 향기롭고
여인의 옷자락처럼 나긋나긋하지
손에 쥔 시간은 짧아
하룻밤에 오리 또 오리
구불구불 산길 오르며
껴안은 팔 풀지 않는 산자락 점령 중
나는 쓰디 쓴 맛 알지
얼굴 붉히지 않아도
내 앉은 자리는 온통 핏빛
그렇다고 몽상가는 아니지
그냥 한 아름 얼싸안고
아리랑 고개 잘도 넘고 싶은 바람이지
<시작노트>
꽃은 소리 없이 피고 진다. 조용히 움직이며 세상을 풍요롭게 한다. 발 없는 향기는 천리를 가고 몸을 구부려 담장을 넘기도, 언덕을 내려서기도 한다. 생각 없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계산된 저들만의 공식이 있을 것이다. 감히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저들의 언어를 대신한 향기와 빛깔은 결코 보잘 것 없는 것이 아니라 명품중의 명품인 것이 분명하다. 남쪽에서부터 올라오는 봄꽃들이 모습을 감추면 벌거숭이산이 봄옷을 입는다. 분홍 분홍… 아이의 살 냄새처럼 향기롭고 여인의 옷자락처럼 나긋나긋한… 산길을 덮고 산자락을 덮고 그러다 어느새 아리랑 고개 넘어가듯 봄날이 간다.
고안나
<시에>등단
시집 ‘양파의 눈물’ ‘따뜻한 흔적’
전자 시집 ‘기억을 묶어 둔 흔적’
시낭송집(cd) ‘추억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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