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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 칼럼> 거미 고향으로 돌려보내기
 
성진숙 울주군 무거초 교사   기사입력  2024/04/24 [16:30]

▲ 성진숙 울주군 무거초 교사  © 울산광역매일

 아침 일찍 학교에 오는 것을 좋아합니다. 텅 빈 교실에 스위치를 켜 불을 밝히고 창문을 열어둡니다. 교실 앞 라온 정원의 봄내 머금은 서늘한 아침 공기가 밤새 교실에 머물러있던 교실 공기와 바뀌는 순간이 느껴집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교실에 들러 창문을 열었습니다. 크게 심호흡을 하며 무심코 창틀을 봤는데, 흰 창틀에 붙은 거미가 눈에 들어옵니다. 영화에나 나올법한 새까맣고 밤톨만한 몸통에 굵은 철사처럼 붙어있는 다리를 가졌습니다. 거미는 이로운 동물이라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신건강을 해치는 해로운 동물이었습니다. 가끔 교실에 찾아오곤 하는 말벌은 알아서 창문을 통해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검은 거미는 창틀 어디를 살펴도 나갈 곳이 없어 보입니다. 곧 아이들이 등교할텐데 거미를 보고 꺄악! 소리칠 아이들의 모습과 신나서 빗자루를 찾으러 우당탕탕 복도로 뛰쳐나갈 모습이 어렵지 않게 그려집니다. 징그럽다 못해 무섭기까지한 검은 거미를 혼자 있을 때 어떻게든 내보내봐야겠다 나름의 굳은 결심을 합니다. 

 

 복도로 나가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왔습니다. 교실에 유일하게 방충망이 움직이는 창을 찾아 거미를 교실 앞 라온정원으로 사뿐히 내려놓을 수 있도록 창문을 열어놓았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쉽사리 빗자루를 거미 쪽으로 가져가지 못합니다. 상상 속에서 빗자루가 거미에게 닿는 순간, 빗자루를 타고 분노한 거미가 내 얼굴을 덮칠것만 같습니다. 그냥 놓아둘까 하다가 거미를 보고 돌고래 소리를 낼 아이들을 떠올리며 용기를 냅니다. 거미는 빗자루에 닿자 옆 창틀 칸으로 옮겨갑니다. 창틀 가운데 빗물이 빠져나가는 동그란 구멍이 있는데 거미도 놀랐는지 작은 구멍으로 큰 몸을 들이밀어 다음 칸 구석으로 피합니다. 빗자루로 거미를 옮겨보려 하는데 큰 빗자루가 닿질 않습니다. 용기 내어 작은 빗자루로 바꾸어 거미를 쓰레받기로 옮겨보려 해봅니다. 그러나 거미는 잽싸게 반대편 창틀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숨어버렸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봐도 다리만 보일 뿐 거미인지 구석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습니다. 일단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 그냥 놓아둔 채로 창문을 닫았습니다.

 

 아침 인사를 마치고 감정 출석부로 기분 나누기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거미 이야기를 했습니다. "선생님이 사실 오늘 고민되는 것이 있어요. 여러분이 들으면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를지도 몰라요"

 

 연두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돋은 듯한 얼굴로 양쪽 팔을 쓰다듬습니다. 초록이는 학급에서 키워야 한다고 합니다. 노랑이는 지금 당장 거미가 어느 창틀에 숨었는지 알려달라 합니다. 알려주면 바로 창틀로 돌진할 태세입니다. 파랑이는 거미를 두들겨 패서 쫓아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거미는 이로운 동물인데 때리는건 좀.... 아이들과 진지한 의견을 주고 받은 끝에 `거미 고향으로 돌려보내기 프로젝트`를 하기로 합니다. 거미의 고향은 교실 앞 라온 정원입니다. 

 

 "미안하지만 선생님은 도저히 거미를 마주할 자신이 없어. 대신해 줄 친구?" 용감한 친구들이 학급에 너무 많습니다. 8명이나 자원을 했습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2명의 도우미가 선발되었습니다. 1교시 종이 치자마자 아이들은 거미를 잡을 나무젓가락과 종이컵, 일회용 장갑으로 완전 무장을 했습니다. 기념촬영을 하고 호기롭게 창문을 열었습니다. 

 

 "어? 아무것도 없어요!" 그사이 거미는 어디로 갔는지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위기감을 느꼈을까요? 통통한 몸으로 창틀 밖으로 빠져나가기 어려웠을텐데 거미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나 봅니다. 씁쓸하게 비닐장갑을 벗는 도우미들을 보니 웃음이 납니다. 거미가 있어도, 없어도 기억에 남을 날입니다. 오늘 하루도 아이들 덕분에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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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4/24 [16:30]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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