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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회>폭설
 
정성수 시인   기사입력  2017/02/26 [14:03]

 한 자(一尺)도 더 쌓인 눈 속에
한 자(一尺)도 더 깊게
내 마음이 묻혔다.
이웃의 왕래가 끊긴지 며칠이고
친구의 소식이 끊긴지 오래이다
저 눈이 녹을 때쯤이면
이 겨울이 가서
세상 모든 것들이 다 녹으리라

 

봄이 오면 또 꽃이 피듯이
산은 강을 불러내어
강은 산을 불러내어
잊어버린 사람들은 잊어버린 사람들끼리
인연의 끈으로 마음을 묶어
산이 강을 업고 달리듯이
강이 산을 안고 흐르듯이
서로의 삶을 염려하고 지고

 

 


 

 

 

밤새 폭설이 내렸다. 수북이 내린 것이 아니라 세상을 눈 나라로 바꿔 놓았다. 폭설이 내리면 농부들은 신이 난다. 새해 풍년이 들기 때문이다. 폭설에 혹한까지 겹치면 벼 뿌리나 풀들에 살아 있던 해충들이 전부 죽는다고 한다. 폭설이 온 천지를 하얗게 만들면 세상은 환해지고 추하고 불결한 것은 전부 감춰진다. 산처럼 쌓인 폭설은 배고픈 시절 '고봉으로 푼 하얀 쌀밥'이다. 1982년의 봄 거리는 연일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했다. 뿌연 봄이었다. 그때 나는 민중가요를 부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모여드는 사람들을 이해한다. 국정을 절단 나게 한 오만 방자한 광기는 우리의 봄맞이를 방해하고 있다. 아직 창밖의 풍경은 무채색이지만, 봄비가 내리면 하룻밤 사이에 고개를 드는 새싹들은 엉덩이를 들썩인다. 꽁꽁 언 날들 사이로 문뜩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고, 마치 긴 터널을 나온 듯 완연한 생명의 환희와 맞닥뜨리는 봄이 오면 누군가와 데이트를 하고 싶다. 폭설이 쏟아져도 봄은 악을 쓰고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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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2/26 [14:03]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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