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닮은 한 쌍의 뿔을 만진다 코뚜레를 벗을 때 비로소 자유를 얻은 소가 눈을 감자 쟁기가 논두렁에서 관절을 꺾고 멍에가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아버지가 담배 한 대를 물고 허공을 바라보자 누운 소가 아버지 등을 토닥이며 사는 일은 다 그런 것이라고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한때는 뿔을 들이대면 산중왕도 겁나지 않았다 쇠고기 한 근을 사들고 집으로 가는 나는 커서 슬프고 커서 순한 소의 눈을 생각하면 오금이 저린다
남달리 소 그림을 많이 그린 이중섭은 소를 통해 인간의 모습을 담아내려 했다. 1953~4년경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하는 회색조의 배경에 희 붓질로 된 작품 흰소를 비롯하여 떠받으려는 소, 노을 앞에서 울부짖는 황소, 용을 쓰는 흰소, 소와 어린이, 소와 여인, 여인과 소와 새, 소와 남자, 사람과 소와 말, 소와 비둘기와 게, 소에 대한 경의, 물고기를 들이받는 소 등 소 그림 다수가 있다. 이중섭은 젊은 시절부터 소에 푹 빠져 지냈다. 하루 종일 소만 바라보며 보낸 날들이 많았다. 어느 해인가는 원산의 송도원 들판에서 소를 들여다보다가 소도둑으로 고발당하기 까지 했을 정도다. 이중섭이 소를 그리기 위한 집념은 대단하다못해 위대하기까지 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그냥 얻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남모르는 노력과 고통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중섭이 소를 그린 것은 소는 평생 쎄빠지게 일만하다가 죽고 난 후에도 자기 몸을 다 내주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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