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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3회> 무의 힘
 
정성수 시인   기사입력  2021/12/12 [17:10]

속 찬 놈이나 속 빈 놈이나 무는 무다

 

어떤 놈은 속이 꽉 차서 

칼 들어가는 소리 

칼칼하다

바람 든 놈은 

칼질할 때마다 

숭숭 뚫린 구멍을 보여준다

 

속 찬 놈과 바람 든 놈이 

모여

깍두기가 되었다

 

우족탕 한 그릇 

해 지우고

막걸리 한 대접 

비우는 것은

뼈도 없고 피 한 방울 안 나는 

무의 힘이다 

 


 

 

▲ 정성수 시인     © 울산광역매일

김장철이 되자 땅속깊이 뿌리를 박고 있던 `무`가 민낯으로 세상에 나왔다. 마음에서 길어 올린 사유가 단단한 몸을 뚫고 나오기까지 가부좌를 튼 채 생각에 잠겨 있던 `무`였다. 어떤 `무`는 깍두기가 되고 어떤 `무`는 장아찌가 되고 그도 아닌 것은 베란다 구석에 방치된다. 한동안 침묵과 적막이 몸피를 감싸자 `무`는 새순을 틔웠다. 한 줌의 햇볕도 한 모금의 물도 없는 곳에서 `무`는 제 몸을 뿌리 삼아 새 순을 밀어 올린 것이다. 어둡고 답답한 공간은 `무`의 마음을 뻐근하게 했을 것이다. 불볕더위에서부터 서리가 내릴 때까지 자신을 지지해준 흙냄새를 그리워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바람을 타고 오는 소리까지 모두 추억이다. 하늘을 질러가는 구름처럼 유연한 생이라면 태어난 자리에서 생의 절정을 만끽했어야 했다. 생이란 한 순간도 호락하지 않다. 머무르는 듯 흘러가며 흘러가는 듯 머무르며 닳고 해져 남루해진 몸짓으로 삶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것이 생이다. 갇혀 있음을 참아야 하고 고여 있음을 견디어야 한다. 상처는 버려야 하고 독소는 스스로 물리쳐야 한다. 뿌리를 내리고 사는 생명들도 발을 내딛고 살아야 하는 존재들도 매한가지다. 남아 있을 게 없는 `무`가 쪼그라들어 볼품없다. 시든 몸으로 피워 올린 새순이 불꽃같은 숨을 내 쉰다. 자신의 향을 남김없이 풀어낸 한잔의 차처럼 남은 생을 죄다 쏟아 부은 `무`가 존경스럽다. 고요함에서 다음 생을 도모하는 `무`의 시간들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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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12/12 [17:10]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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