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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5회> 배롱나무꽃
 
정성수 시인   기사입력  2019/06/23 [15:34]

 오백 살 배롱나무가 선국사* 앞마당에 
가부좌를 틀고 있다
염화시중의 미소를 띠고서
여름밤 폭죽처럼 피워 낸
저 붉은 꽃들
깡마른 탁발승이 설법을 뿜어내는지
인연의 끈을 놓는 아픔이었는지 
이승에서 속절없이 사리舍利들을 토해내고 있다.
배롱나무꽃 
붉은 배롱꽃은 열꽃이다 
온 몸으로 뜨겁게 펄펄 끓다가 떨어진 꽃잎 자국은 
헛발자국이다
피기는 어려워도 지는 것은 금방인 꽃들은
저마다 열병을 앓다가 진다
저물어가는 여름 끝자락에
신열을 앓다가 가는 사람이 있다 
배롱꽃처럼 황홀하게 
무욕의 알몸으로 저 화엄 세상을 향해서
쉬엄쉬엄

 

* 선국사 : 전북 남원시 교룡 산성 내에 있는 사찰.

 


 

 

▲ 정성수 시인    

산사의 저녁은 고즈넉함과 쓸쓸함이 묻어난다. 저녁이라는 말에는 한낮의 작열하던 열기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인다. 황혼이 젖어드는 산자락에 고요히 앉은 산사는 말이 없다. 풍경소리는 뒷산 감나무에 걸려 있고 까치 한마리가 대웅전 지붕에 앉아 꼬리를 깐죽거린다. 아랫마을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는 허기가 되어 허공에 퍼진다. 법당에서 흘러나오는 목탁소리와 함께 불경을 외는 스님의 청아한 목소리는 이 세상에 남은 마지막 풍경이다. 온 몸을 휘감는 바람과 사람의 마을까지 스며드는 풍경소리가 모든 번뇌를 감싸 추면 중생들은 대웅전을 향해 합장을 한다. 우리는 잠시 이승에 머물다가는 나그네 일 뿐이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말이 부처가 되어 내 마음에 들어온다. 저 세상으로 가면 모든 재물이나 심지어 육신조차 한 줄기 바람이고 아침 이슬이고 한 점 구름일 뿐이다. 우리는 무엇을 바라며 무엇을 위해 이토록 아등바등 살아가는 것인지? 뒤돌아보아도 산사는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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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6/23 [15:34]   ⓒ 울산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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