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형 논설위원 전 울산대 경제학과 교수 © 울산광역매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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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부는 올해 9월 1일부터 국민연금 개혁안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프랑스의 이번 연금개혁의 핵심 내용은 정년을 현재 62세에서 2030년부터는 64세로 늘린다는 것이다. 다만 일을 일찍 시작한 경우에는 조기 퇴직이 가능하도록 했다. 예를 들어 일을 시작한 시기가 16세 이전이면 58세, 18세 이전이면 60세, 20세 이전이면 62세, 20∼21세 사이면 63세에 퇴직해도 된다. 그리고 지금은 42년 동안 연금을 납입해야 연금 전액을 받지만, 2027년부터는 연금 납입기간이 43년으로 1년 더 길어진다. 대신 최소 연금 상한을 최저임금의 75%에서 85%로 끌어올렸다.
프랑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74%로 세계 최상위 수준이다. 즉 월급이 100만원인 근로자가 퇴직한 후 받는 연금액이 74만원 수준이란 의미이다. 프랑스 국민들은 퇴직한 이후에도 이전과 비슷한 수준의 생활이 보장되므로 은퇴만 기다리면서 일한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이다. 프랑스의 연금은 42년간 월급의 28%를 연금 보험료로 납부해야 하는 고(高)부담 고(高)복지 시스템이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월급의 9%를 연금으로 내고, 은퇴 후 월급의 40%를 연금으로 지급받는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이번 연금개혁에 반대해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전국 단위의 시위와 파업이 끝없이 이어졌다.
프랑스 국민들이 연금개혁에 반대한 주된 이유는 정년 2년 연장과 연금 납부기간 1년 연장으로 인해 은퇴 후 생활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하원에서 법안이 통과되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해 하원 표결을 건너뛸 수 있는 헌법 조항을 이용해 연금개혁을 이뤄냈다. 이번 연금개혁에도 불구하고 연금의 재정적자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연금자문위원회(COR)는 지난 6월 연례보고서에서 내년부터 연금이 지속적으로 적자를 기록할 것이며, 2030년에도 정부가 약속한 재정균형 상태를 회복하진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 정부와 여당에서도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 공적연금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개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공적연금 개혁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저(低)출산과 고령화 현상으로 국민연금의 조기 적자가 예상되는데다,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은 이미 적자가 누적되고 있어 매년 정부예산이 투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연금 보험료율은 18.3%로 우리나라의 두 배가 넘는다. 이번에도 개혁에 실패한다면 국민연금기금은 2055년쯤 고갈될 것이다.
연금개혁은 어렵기도 하지만 인기가 없는 정책이다. 역대 정권들이 연금개혁의 필요성은 언급하면서도 결국은 개혁을 미루어온 것만 봐도 그렇다. 1988년 국민연금 제도 도입 이후 개혁은 두 차례뿐이었다. 김대중 정부 때 소득대체율을 70%에서 60%로 낮추고, 연금수령 나이를 60세에서 65세로 늦췄으며, 노무현 정부 때는 소득대체율을 40%로 낮췄다. 그러나 연금 보험료율(9%)은 올리지 않고 25년째 그대로이다. 2018년에 기금 고갈 시점이 2057년으로 3년 앞당겨진 전망이 나오자,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는 대신 연금 보험료율을 13%까지 인상하는 개혁안을 마련했으나 무산되었다.
최근 정부 자문기구인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가 `보험료를 더 내고, 더 늦게 받는` 개혁 밑그림을 내놨다. 연금 보험료율을 2025년부터 5~15년간 매년 올려 12~18%까지 높이고, 연금개시 연령도 66~68세로 늦추자는 것이다. 여기에 기금 운용 수익률을 0.5∼1%포인트 올리면 연금 고갈 시기가 최대 2093년까지 연장된다는 시나리오다. 결국 이번 연금개혁안의 핵심은 현재 9%인 보험료율을 인상하고, 연금개시 연령을 현재 65세보다 늦추자는 것이다. 만약 지금 연금개혁을 실시하지 않으면, 2055년 이후에는 최고 34.9%까지 연금 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는 추정도 나온다.
연금 보험료는 지금보다 두 배나 더 내고, 연금수령은 3년이나 늦게 받으라는 연금개혁안은 국민들의 엄청난 반대에 부딪힐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연금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대 절명의 과제다.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보장하는 연금개혁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는 건 자라나는 미래 세대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6개월 동안의 격렬한 반대 시위와 지지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끝내 연금개혁을 이루어낸 것처럼, 우리 정부와 여당도 국가와 우리의 미래 세대를 위해 과감한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한다. 어쩌면 이번이 연금개혁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